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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술사 전공하며 미술에 관심”

2022-02-04 (금)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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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메두사’ 촬영중인 영국 감독 피터 웨버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술사 전공하며 미술에 관심”

‘메두사’ 촬영중인 영국 감독 피터 웨버

스칼렛 조핸슨이 나온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연출한 영국 감독 피터 웨버(53)를 영상 인터뷰 했다. 웨버는 최근 19세기 프랑스의 낭만파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을 다룬 ‘메두사’(The Medusa)를 찍고 있다. 제시 아이젠버그, 피어스 브로스난 및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나오는 이 영화는 나폴레옹 후기 좌초한 군함 메두사를 뗏목에 의존해 탈출한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 ‘메두사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을 그린 제리코의 삶을 다루고 있다. 제리코는 이 배에 탔다가 사망한 친구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려는 집념과 함께 저주 받은 사랑에 시달렸다. 웨버는 질문에 속사포 쏘듯 빠르고 활기차게 대답했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술사 전공하며 미술에 관심”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의 뗏목’.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메두사’는 모두 유명한 그림에 관한 내용인데 그림을 주제로 한 영화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할아버지 탓이다. 내가 네 살인가 다섯 살 때 할아버지는 웨스트 런던의 지하실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벽지 무늬가 다채로운 작은 그림틀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미술관에 들를 때마다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엽서를 사와 벽에 꽂아놓곤 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아파트는 마치 미술관과도 같았다. 할아버지는 어린 내게 그림을 지적해 그 것이 누구의 것인지를 묻곤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나는 어릴 때부터 브라크와 피카소와 마티스 및 모네를 구분할 줄 알았다. 어린 나이에 표현주의와 인상파의 차이와 함께 그림이 어느 나라의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 것이 내겐 미술과 미술사에 관한 좋은 교육이 되었다. 이로 인해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감정적 연계도 강해졌다. 나는 대학에서도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그림에 관심이 깊었지만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 영화감독이 됐다. 그림을 그릴 수만 있었다면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메두사의 뗏목’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뉴질랜드에서 영화를 찍을 때 한 작가를 만나기 위해 들른 호텔이 1819년에 지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역사적으로 1819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봤더니 그 해가 ‘메두사’의 그림이 그려졌던 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림에 관한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그 그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 배경에 관해서는 몰랐다. 그리고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배의 좌초로 100여명이 사망한 비극적 사실과 함께 그 배경에는 극적인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복합적으로 포함돼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따라서 영화는 단순히 한 화가의 범주를 넘어 보다 큰 내용의 것으로 발전하게 됐다. 요절한 제리코의 삶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는데 그는 특히 가족의 결혼 관계로 인해 자기 사촌이 된 여인과 사랑을 해 이것 또한 매력적 얘깃거리가 된 것이다.”

-앞으로 무슨 영화를 구상 중인지.

“제작팀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아 자세히 말 할 수는 없지만 세 가지를 구상 중이다. 먼저 이탈리아 계 미국인 각본가가 쓴 작품을 위해 최근 2주간 로마를 방문, 사전 답사를 했다. 두 번째는 미스터리인데 북 이탈리아에서 찍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는 프랑스 작품이다. 더 이상 자세히 밝힐 수가 없어 미안하다.”

-‘메두사’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후속편으로 생각하는지.

“난 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뒤를 이은 그림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같은 그림이긴 하지만 전연 느낌과 분위기가 다른 것을 찾았다. ‘메두사’에 특별히 관심이 갔던 또 다른 이유는 그림의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림 중간에서 팔을 들고 멀리서 지나가는 다른 배에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이 흑인이다. 19세기 초에 그림의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것은 아주 보기 드문 사실이다. 그래서 제리코의 다른 그림들을 연구했더니 흑인을 중심으로 한 것들이 여럿 있었다. 아주 흥분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림은 엄청나게 커 그 앞에 서면 마치 아이맥스 화면 앞에 서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영화가 있기 전에 대형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셈이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당시에 검은 페인트를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 제리코는 검은 페인트 대신에 보트의 침수를 방지하는데 쓰는 타르를 사용했다.”


-당신은 기록영화와 TV 작품 그리고 극영화를 두루 섭렵하며 만드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라도 있는지.

“나는 아이가 없지만 그 것은 마치 내 아이들 중 어느 아이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과도 같다. 나는 다양성을 좋아한다. 만들기가 힘든 극영화를 끝내면 극영화보다 만들기가 자유롭고 가벼운 기록영화 쪽으로 간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것은 내 집 융자금을 갚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돈 때문에 만드는 것도 있지만 가슴에서 원해 만드는 것도 있다. 기록영화를 만드는 기쁨은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자리에서 한 발치 물러나 카메라 앞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데 있다. 이런 기록영화를 만들고 나면 이번에는 자신을 통제해야 하는 극영화가 만들고 싶어 그 쪽으로 방향을 틀곤 한다. 이렇게 두루두루 찾아다니는 것이 좋다.”

-당신이 그림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 듯이 당신의 영화가 다른 예술가의 작품에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본 사람들이 내게 와 무척 감동적이고 또 그로 인해 미술을 즐기게 됐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 영국 사람들은 겸손해 그런 얘기를 하면 내 자랑하는 것 밖에 안 돼 내 얘기만 하겠다. 내게 있어 그림과 영화의 관계는 아주 지대하다. 영화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오랜 팬이다. 그의 그림에 관해 공부했는데 그 결과 그의 그림들의 대부분은 같은 방에서 그려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도 그 점에 유의했다. 실물을 본 딴 화실세트를 만든 뒤 영화를 찍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서자니 마치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었다. 지금까지도 그 기분은 잊지 못하고 있다. ‘메두사’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페르메이르와 완전히 다른 화가의 그림에 관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의 그림은 미니말리스트 적인 반면 제리코의 그림은 폭력적이라고 하겠다.”

-당신은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음악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를 당신 영화에 써 그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해준 장본인인데.

“내가 그를 내 영화에 썼을 때만해도 그는 프랑스 영화계에만 알려졌지 국외에서는 그를 몰랐다. 그러다 내 영화에 쓸 만한 영국의 작곡가를 찾던 중 우연히 그가 음악을 작곡한 한 영화를(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보면서 그 음악을 듣고 바로 이 사람이다라고 결정했다. 그를 국제적으로 소개한 사람이 된 것이야말로 즐거운 일로 이제 그는 현대 영화음악 작곡의 우상이 되다시피 했다.”

-코비드-19 이후 생활 철학에 변화라도 있는가.

“삶에 대한 내 견해가 바뀌었다. 난 지난 2년간 내 형제와 어머니를 잃었다. 삶의 일들이란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와 당신을 녹다운 시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일들의 원인을 찾기만 한다면 그 것들을 극복해낼 수 있다. 난 그 치유의 방법을 자연 속에서 찾고 있다. 난 요즘 런던에서 보다 안달루시아의 언덕에서 더 많이 보내고 있다. 도시인인 내가 최근에 다소 자연인이 된 것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자연 속에서의 고요와 명상하는 삶이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코비드가 우리에게 고난과 슬픔을 가져다주었지만 한편으로 그 고난과 슬픔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또 배울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잊거나 무조건 과거에 집착해 내던진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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