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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대선토론

2022-02-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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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9월26일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존 F. 케네디 상원의원과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 부통령은 미 역사상 처음으로 TV토론을 벌였다. 이날 토론을 시청한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7,000만 명에 달했다. 이날 토론에서 케네디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유창한 언변으로 건장함과 자신감을 부각시킨 반면 닉슨 후보는 땀을 흘리고 말을 더듬는 등 허약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토론 다음날 케네디 선거유세장에 케네디의 나이와 종교에 대해 의심을 품거나 그에 대해 거의 몰랐던 민주당과 무당파 지지자들이 운집하고, 심지어 보수 성향의 주지사와 유권자들조차 케네디 지지 쪽으로 도는 등 파장은 엄청났다. 케네디는 6주 뒤 열린 대선에서 초접전 끝에 승리해 미국의 최연소 대통령이 됐다.

이전까지 닉슨에 비해 인지도가 크게 밀렸던 케네디는 TV 대선토론을 통해 일약 ‘수퍼스타’가 됐다. 만약 TV 대선토론이 없었다면 그는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TV 대선토론은 미국의 정치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현대정치는 ‘미디어크라시’라고 불릴 정도로 미디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그 가운데 TV토론은 ‘미디어 선거의 꽃’이라 불릴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대선토론의 영향력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케네디와 닉슨 이후 TV 대선토론을 통해 실제 판세가 뒤집힌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 모았던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간의 대선토론에서 전문가들이 승자로 꼽았던 사람은 클린턴이었다. 하지만 정작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은 트럼프였다.

이런 사례가 보여주듯 TV 대선토론이 선거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60년 전과는 달리 그리 크지 않다. 후보자들이 토론을 벌이기 전에 이미 많은 유권자들은 지지후보를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일단 후보를 정하고 나면 웬만해선 이를 바꾸려하지 않는다.

정치적 양극화가 날로 극심해지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TV 대선토론은 유권자들의 결정을 바꾸게 만들기보다 그런 결정을 한층 더 견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설득효과’보다는 ‘강화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이렇듯 TV 대선토론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지 않고 제한적이지만 초박빙의 구도 속에서 판세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가능성은 있다. 막바지까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소수 부동층의 표심에 영향을 줘 유의미한 지지율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을 뽑는 20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3일 첫 대선토론이 열렸다. 유력후보 간의 양자 토론이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첫 4자 토론이 치러진 것이다. 앞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토론회가 몇 차례 더 실시될 예정이다. 5년 간 국정을 맡길 대통령을 뽑는 선거치고는 검증절차가 너무도 부족하다. 과연 이런 검증과정을 통해 제대로 된 인물을 뽑을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다.

그나마 한 가지 긍정적인 징후는 유권자들 다수가 TV 대선토론이 20대 대선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이런 응답을 한 유권자는 64%였다. 특히 표심의 유동성이 심한 20~30대에서는 이 비율이 70%를 넘었다. 횟수나 형식면에서 부실하기 짝이 없는 대선토론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일부 유권자들의 판단을 돕는 길잡이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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