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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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한 대선이라고 외면해선 안 된다

2022-02-01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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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0대 대선 투표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20대 대선 레이스는 유력 후보들과 가족을 둘러싼 도덕성 논란과 온갖 의혹들로 인해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지지율의 흐름 또한 후보와 관련한 부정적 뉴스들이 나올 때마다 등락을 거듭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지지율의 하락과 반등이 단기간에 반복되면서 판세는 아주 짧은 주기로 출렁이고 있다.

대선판을 지켜보면서 떠올린 것은 1950년 대 미국 외교관으로서 한국에서 오래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의 관찰이다. 헨더슨은 한국정치를 ‘소용돌이(vortex) 정치’라는 한마디로 진단했다. 마치 소용돌이처럼 끊임없이 휘몰아치고 요동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정치가 이슈나 가치가 아니라 권력과 인맥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타협과 양보보다는 음해, 뒤통수치기, 단기적 술수와 책략 등이 난무하는 저급한 정치문화가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가운데 정당은 통치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는, 오로지 권력만을 지양하는 기회주의적 인물들이 모인 유동적이고 뿌리 없는 모임이 되고 있다고 봤다.


헨더슨의 뼈아픈 지적은 1950년대보다 오히려 21세기 한국정치를 진단하는 데 더 유용해 보인다. 대선 레이스에서 후보들의 비전과 자질 비교를 위한 절차들은 뒷전으로 밀린 채 유권자들의 분노와 감성을 자극하려는 선동과 네거티브만이 판친다. 인위적인 바람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일부 미디어의 작위적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정치 판세가 외형적으로는 역동성으로 비춰질지 몰라도 정치의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정당과 그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선택하는 정치문화가 취약하다보니 그때그때의 단기적 상황에 따라 표가 요동치는 불안정성이 한국정치를 지배해왔다.

문제는 이 같은 정치문화의 특성들이 초래하는 퇴행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이런 퇴행이 나타나고 있다. 엎치락뒤치락 판세 속에 지지율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자 제1야당과 그 후보는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세대 및 젠더를 갈라 치는 전략에 몰입했다. 보수정당이라기보다 극우정당에 가깝다. 건강한 가치를 지난 공당의 모습이라 보기 힘들다.

이번 대선에서의 선택에 따라 자칫 한국사회에 또 한 번 퇴행과 반동기가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될 정도다. 정치에 관해 주기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한 지인은 혁명의 완성까지 세 번의 반동기를 거쳐야 했던 프랑스의 예를 들며 “한국사회 또한 비슷한 길을 걸어가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런 걱정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기우에 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사회로서는 정말 불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을 책임질 인물을 뽑는 대선에서 인물의 됨됨이와 능력이 아닌, ‘정권교체 필요성’이 후보지지의 절대적 이유가 되고 있는 현상 또한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선은 과거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선택이 돼야 한다. 누구를 혼내려 투표장에 나가서는 안 된다.

인물의 능력과 자질은 외면한 채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혹은 누군가에게 너무 꽂혀서 ‘묻지마 지지’를 보낼 경우 어떤 국가적 불행이 초래되는지를 우리는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다. 모든 재난에는 전조가 있기 마련이다. 박근혜를 둘러싼 최순실 일가 의혹은 17대 대선 당시 이미 제기됐었다, 또 그의 자질 문제는 18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박근혜를 선택했다. 이후 벌어진 국가적 비극은 이런 징후와 의혹들을 외면하고 무시했던 선택의 필연적 결과였다.

한국사회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퇴행을 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20대 대선은 이것을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번 대선이 아주 허접스러운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대선의 결과가 가져 올 역사적 함의는 역대 그 어느 대선보다도 무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비호감 대선이라고 이를 외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20대 대선에 유권자 등록을 한 미주 한인은 5만5,000여명이다. 팬데믹 등 여러 상황들로 인해 지난 19대 대선에 비해서는 크게 줄었다.

“내 한 표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면 1억 명 이상이 표를 던졌던 2000년 미국 대선의 향방이 플로리다의 수백표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바란다. 한국의 20대 대선 역시 박빙의 승부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아무리 정치가 못마땅하고 정치인들이 혐오스럽더라도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결정짓는 유일한 행위는 여전히 정치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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