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날씨가 제법 맵다. 눈도 가끔 내린다.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차 윈도우로 푸실푸실 흰 눈이 내렸다. 하늘은 재색으로 엄청 낮게 내려와 하루종일 진눈개비가 흩날릴 기세였다.
꼭 이런 날씨였다. 40여년 전 설날을 코앞에 두고 엄마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상 음식 간을 맞추기 위해 조선간장이 필요했던 것. 누구나 가난하던 당시, 그래도 된장, 고추장, 간장은 살림 기본인데 그것마저 넉넉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더 맛있는 간장으로 상을 차리려 한 것인지, 설날을 앞두고 조선간장을 친척 아줌마에게 부탁을 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줌마는 이 일을 잊어버렸는지 설날 새벽이 다가오도록 집으로 갖고 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쉬운 말 두 번 하기 싫어서 재촉을 안했던 것이고 해가 밝기 전 차례상 준비를 시작했다. 그날 아침에야 기억이 난 아줌마는 간장 한 주전자를 들고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정월 초하루부터 남에게 빌린 간장으로 조상에게 올리는 상을 차리지 않겠다고 도로 가져가라고 했다. 내내 가난했던 살림살이에 새로운 해라고 뭐 달라질 것인지, 그래도 새해의 시작부터 그것이 무엇이든 남에게 빌리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아줌마가 오히려 사정하면서 간장 주전자를 들이밀었지만,..ㅎㅎ, 엄마는 소금 간으로 탕국을 만들었던 것같다.
올해의 설날은 2월1일, 화요일이다. 교회를 나가거나 성당에 나가더라도 차례상을 차리는 가정, 추도예배를 하거나 위령미사를 지내거나 명절 법회를 드리는 가정, 기도만 하고 식구들과 떡국을 먹는 가정, 평상시와 똑같이 보내는 가정,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이 날을 보낸다.
뉴욕한인회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로 힘든 가정에게 ‘설 명절맞이 사랑의 식품 나눔 행사’를 개최한다. 오는 2월5일 플러싱 먹자골목 머레이 힐 광장에서 떡국떡과 만두, 과일, 빵 외 생필품을 선착순 무료배포 한다. 저소득층과 취약계층 1,000가정이 대상인데 꼭 필요한 사람들이 받아가 추운 겨울 따뜻한 떡국 한 그릇을 끊여먹기 바란다.
퀸즈한인회도 오미크론 확산으로 작년처럼 ‘설 퍼레이드 우리설 잔치’는 취소하지만 2월5일 노던블러바드 156가에서 떡국떡을 비롯 배즙, 손세정제, 마스크 등을 선착순 무료 배포한다.
식품비가 올라 먹고 사는 일이 만만찮다 보니 키스사를 비롯 여러 한인단체들이 힘을 모아서 치르는 행사들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 대부분이 1월1일 양력 설날을 지내지만 음력 1월1일은 또 그날대로 지내고 있다. 한인마켓에 가면 각종 떡과 떡국떡, 명절 음식이 날개 돋힌 듯 팔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설날에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흰떡을 사용하여 떡국을 만드는 것은 새해 첫날이 밝아오므로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하는 등 태양숭배 사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뉴욕의 한인아이들은 이 날 학교를 가지 않는다. 2016년 뉴욕시가 설날을 공립학교 휴교일로 지정했고 Apple 아이폰 달력에도 ‘Lunar New Year’ 라고 표기되어 있다. 아시안 민족 최대의 공휴일이지만 음력설이 지켜지는 주는 여전히 미국의 몇 개 주에 불과하다.
대체로 음력설을 기념하는 나라는 한국, 중국, 대만, 베트남, 몽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이다. 단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힌두교력 새해나 이슬람력 새해도 지낸다.
음력설을 공식 인정하는 것은 뉴욕시가 인종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 타인종의 풍습과 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장차 인종차별이나 인종혐오범죄를 미연에 방지하는 일이 될 것이다.
2022년 1월1일 새해를 시작하며 계획을 세웠으나 작심삼일이 되어버린 분들, 음력설인 2월1일부터 다시 새해 새결심을 해도 될 듯, 어떤 계기로든 새롭게 거듭 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
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