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2021)은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소녀의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가까운 미래의 미국, 아이들은 장난감처럼 ‘에이에프’(Artificial Friend)라는 AI로봇 친구를 가질 수 있고, 사람의 감정까지 완벽하게 학습하는 로봇은 자신을 선택해준 친구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며 동반자로 살아간다. 이 사회에서 아이들은 어릴 때 지능이 유전적으로 ‘향상’되고, 그에 따라 사회적 계급도 결정된다. 물론 모두가 ‘향상’의 혜택을 누리는 건 아니고, 재력이 못 미치거나 유전공학기술을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에서 소외된 채 하류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소설은 AF 클라라의 시점에서 묘사된다. 몸이 약한 소녀 조시의 회복을 위해 철저히 희생하고 헌신한 후 야적장에서 수명을 다하는 클라라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그에 비견되는 인간들의 비틀린 마음을 거울처럼 비추며 가슴 저미는 아픔을 선사한다.
이시구로의 또 다른 소설 “나를 보내지마”(Never Let Me Go, 2005)는 인간의 장기이식을 위해 복제된 클론들의 이야기다. 1990년대 영국이 배경이지만 인간복제가 가능한 미래라는 독특한 시점,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 기숙학교에서 성장한 복제인간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그렸다. 이성과 감성과 ‘영혼’을 가진 캐시와 루스와 토미는 장기기증자라는 운명에 순응하지만 자신의 생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고자 온갖 애를 쓰다가 결국 여러번에 걸친 장기기증 후 신체기능이 다하면 죽음을 맞는다.
두 소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와 복제인간의 생애와 최후를 담담하고 애잔하게 묘사한다. 자신을 친구로 선택한 인간만을 사랑하다가 용도 폐기되는 AI로봇, 인간과 똑같은 온전한 생명체인데도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복제인간, 과학기술이 창조해낸 인간대체물의 존엄성에 대한 조용한 질문이다.
201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시구로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애수가 가득하고 안개처럼 짙은 여운을 남긴다. 마침내 모든 일이 지나가고 예정된 쓸쓸한 순간이 찾아올 때, 마음 깊이 파고드는 상실의 아픔이 깊고 무겁다. 그의 다른 소설 “남아있는 나날”(1989)과 “파묻힌 거인”(2015)에서도 그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앤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 주연의 영화 “남아있는 나날”(Remains of the Day)을 본 사람들은 그 잔잔한 비애를 기억할 것이다. “나를 보내지마”도 영화로 만들어졌고, “클라라와 태양” 역시 곧 영화화될 모양이다.
미래사회의 인공지능과 복제인간에 관한 SF 소설과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블레이드 러너’는 고전이고, ‘매트릭스’ 시리즈도 그 중 하나다. 2004년부터 6년 동안 TV에서 방영됐던 ‘배틀스타 갈락티카’(Battlestar Galactica)는 가장 흥미롭게 본 사이파이 드라마 시리즈다. 인류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AI ‘사일런’의 핵 공격을 받아 전 행성이 파괴되고, 살아남은 소수만이 우주전함을 타고 거주 가능한 행성을 찾아 드넓은 우주를 방황한다. 인간의 모습을 한 사일런들의 끈질긴 추적과 공격이 집요하고, 결국 그들이 현생인류의 한 부분을 이룬다는 놀라운 결말이 찾아온다.
그보다 더 놀랍고 인상적인 SF는 최근에 읽은 프랭크 허버트의 우주대하소설 ‘듄’(Dune)이다. 작년 말 개봉된 영화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각 700~900페이지에 달하는 6권을 완독하는 일은 크나큰 도전이었다. 양도 어마어마하지만 내용이 너무 깊고 넓고 방대해서, 수많은 행성에 퍼져 거주하는 수많은 부족들의 수천 년에 걸친 역사가 숨 가쁘게 펼쳐진다.
여기서 인류는 오히려 기계문명을 배격한다. 고도로 발달한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자 반기계운동이 벌어졌고, 대신 인간들이 극단적인 수련과 약물의 도움으로, 또한 오랜 세월 유전자 선택교배를 통한 진화의 결과로 초능력과 예지력을 갖춘 수퍼 휴먼들을 만들어낸다. 멘타트, 바샤르, 골라, 틀레이렉스, 퀴사츠 헤더락, 베네 게세리츠 등 정신적 신체적 능력이 증폭되고 수명이 연장된 초인간들이 우주를 지배하고 전쟁하면서 인류는 더 멀리 더 예측불가능한 곳으로 도약한다. 이 소설이 1965년에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경이롭다.
오늘날 AI와 유전자 편집기술의 발전은 “클라라와 태양”에 묘사된 것과 비슷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한다. 앞으로 몇십년 내에 유전공학과 생명공학기술은 인간의 신체기능과 수명뿐 아니라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천재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고, ‘듄’에 나오는 초인간까지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의 마지막 장에서 “지난 40억년 동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했는데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면서 “유전자를 주물럭거려 더 이상 호모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썼다. 그의 후속저서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에서는 “이제껏 신의 영역이었던 ‘불멸, 행복, 신성’의 영역으로 다가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 물결이 거세서 개인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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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