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 언제 누가 했는지는 모른다 해도 이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유명한 말의 주인공은 패트릭 헨리.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18세기, 버지니아에 살던 변호사이자 정치인이다. 영국의 식민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며 독립혁명에 앞장섰던 그는 탁월한 웅변가였다. 보통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많은 시민들이 자유를 위한 투쟁에 나서도록 고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간은 매 순간 새로 오는 시간에 떠밀려 사라지고, 시간 중에 떠돌았던 수많은 말들도 함께 사라진다. 그런데 간혹 시간의 풍화작용을 거스르며 기어이 살아남는 말들이 있다. 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인용되며 생명력을 갖고, 말의 주인공 역시 역사 속에서 호출되며 다시금 존경받기도, 비난받기도, 희화화되기도 한다.
미국독립사를 말할 때면 “자유 아니면 죽음!”이 단골로 나오고, 19세기 유럽의 정복자 나폴레옹을 추앙하거나 비판할 때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이 빠지면 허전하다. 한국에서 선거 때면 등장하는 대표적인 말은 ‘우리가 남이가’. 1992년, 부산 초원복집, 김기춘(전 법무장관), 김영삼(민주자유당 대선후보)을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은 수없이 되풀이되며 암묵적 담합을 끌어내기도 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기기도 한다. 한국 정치사에는 “전 재산은 29만원”이라는 서글픈 말도 있다.
연방 투표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역사 속에서 한 인물을 소환했다. 바이든은 근년 공화당 주들이 제정한 투표권법들이 소수계의 투표 기회를 제한한다며, 연방법으로 유권자들의 투표권 행사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연설에서 그는 말했다. “미국의 모든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묻습니다. 어느 편에 서고 싶습니까, (마틴 루터) 킹 박사 편입니까, 조지 월러스 편입니까?”
킹 목사는 물론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기억되는 인권운동의 상징. 조지 월러스(1919~1998)는 앨러배머의 민주당 정치인으로 인종차별의 상징적 인물이다. 앨러배머 주지사를 4번 역임하고 대선 출마를 4번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960년 즈음 남부의 정치인들 중 인종차별주의자가 숱하게 많았지만 유독 그가 지목받는 이유는 그가 한 말 때문이다. “지금도 인종분리, 내일도 인종분리, 영원히 인종분리(Segregation now, segregation tomorrow, segregation forever)!”라는 말이다. 1963년 1월 주지사 취임연설에서 그가 했던 이 말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60년대 민권운동 반대진영의 대표적 슬로건이 되었다.
그가 처음부터 꼴통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앞서 도전했던 주지사 선거에서 강경 인종차별주의 후보에게 패한 뒤 입장을 바꾸었다. 인종분리의 신념을 앞세우고 연설문 작성자로 KKK 리더를 기용, 그 결과물이 앞의 문구이다.
주지사로서 그는 인종통합을 기를 쓰고 막았다. 공립학교 인종분리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백인 학교들에 흑인학생들이 등록하려 하자 그는 교문 앞에 서서 막았다. 케네디 행정부의 인종통합 정책에 대해 그는 “대통령이 앨러배머를 마틴 루터 킹에게 넘겨주라고 한다”며 비판했다.
세월이 흐르며 세상은 변하고 한때 인기 있었던 그의 신념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말을 남긴다. 말을 통해 이름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