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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색깔혁명

2022-01-17 (월)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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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조지아공화국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부정부패가 도를 넘은 데다 여당이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 선거를 획책하자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계엄령 선포 경고에도 퇴임 요구가 거세지자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것이 2000년대 초반 구소련권 국가들에 몰아친 ‘색깔혁명(color revolution)’의 시발점인 ‘장미혁명’이다.

1년 뒤인 2004년 11월 우크라이나 대선 직후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오렌지혁명이 일어났다. 이어 2005년 키르기스스탄에서 튤립혁명, 2018년 아르메니아에서 벨벳혁명이 이어졌다. 색깔혁명은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에서 시민들의 봉기로 친 러시아 정권이 연쇄 붕괴된 현상을 말한다. 정권의 비리와 부정 선거가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했는데도 러시아는 서방이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색깔혁명이란 용어는 시민들이 특정한 꽃을 들거나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시위 현장에 등장한 것에서 유래됐다. 시위대는 장미혁명 당시 장미를 손에 들었고, 오렌지혁명 때에는 오렌지색 옷을 주로 입었다. 오렌지혁명을 이끌었던 야당 지도자 빅토르 유셴코와 지지자들은 오렌지색 옷과 깃발 등에 ‘타크(Так·네라는 뜻)!’라는 로고를 새겨넣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시위 군중이 북부 산악 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 튤립을 상징으로 내걸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인접 5개국 정상들과 가진 화상회의에서 “외부 세력이 우리 내부를 흔드는 색깔혁명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국의 내정에 적극 개입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글로벌 패권 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과 러시아는 팽창주의 행태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자국이 주도하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연합군을 카자흐스탄에 투입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우리가 외세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자강 능력을 키우고 국론을 모아야 할 것이다.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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