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앞의 촛불과 같았던 조선을 구한 성웅 이순신장군은 하루 아침에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이 아니다. 그는 32살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를 했고 이후 북방의 변방에서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북병사 이일이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아군의 피해를 보게 했다고 모략 장계를 올려 이순신은 계급장을 떼이고 투옥되어 극형의 처지에 몰렸다가 장형을 받고 백의종군을 했다.
또 원균의 모략에 의해서 참형을 선고받기도 했지만 우의정 정탁의 상소로 백의종군하라는 명으로 풀려났다. 사실 이순신은 원칙적이며 고집이 강해서 때로는 주위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려고 관사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 오라고 했지만 나라의 재산을 사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한동안 고생을 하기도 했다.
이순신은 관직 생활 16년만인 47세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발탁이 되었고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침략으로 바람 앞의 촛불과 같았던 조선을 지켜낸 위대한 여정을 끝내고 54세에 전사하였다.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하고 16년동안 산전수전 거치면서 배우고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면 과연 위기의 나라를 구할 장수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들판을 달리는 크고 힘 좋아 보이는 말도 조련을 하여야 명마가 되듯이 사람도 해당 분야의 조직에 적어도 15년 이상 일을 하면서 그 안의 속성을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스스로 세울 수 있어야 그 분야의 책임 있는 역할을 할 수가 있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낙하산으로 또 한때의 인기로 그 자리에 앉았다가는 자신도 조직도 망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인재를 기르고 중용할 때도 해당 분야에서 10년 이상은 키워야 하고 10년이상 일을 꾸준히 한 사람들 중에서 중요 자리에 앉혀야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왕자들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는 왕과 국정의 책임자들이 왕자를 교육하고 관리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는 시민들이 그런 지도자를 키워야 하고 그 중 잘 성장한 인재들을 지도자의 자리에 선출을 해야 하는 책임과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피곤하다. 그러다 보니 시민의 임무와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대행할 선출직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 선출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받들어 모시려는 봉건적 잔재에서 머물러 있는 시민들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은 거짓 선동가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열정을 가지고 일을 잘하는 정치인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선출직에 대한 견제와 관리를 해야 하지 선출직들에게 준 권한을 권력화 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270여년 이상이 흘렀지만 아직도 시민들의 의식속에는 봉건시대의 권력에 대한 잔재가 남아 있고 이것이 지금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선출자들의 권한에 대한 견제와 관리 보다는 권력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그들에게 충성을 하려고 한다.
또한 시민에 의해 선출된 선출직들도 자신들의 권력을 사유화 하고 절대화 하여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파괴자들은 인종주의, 이념 그리고 지역주의를 선동하여 선거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선거를 할 때마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퍼트려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고 심각하게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에 대한 시비는 곧 혼란과 극단적 대결을 불러 온다.
미국은 매년 선거가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 작동 방식인 선거에 무관심 해지면 소수계로서 우리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민주주의가 혼란에 빠진다.
민주주의가 혼란해지면 다인종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소수계가 가장 위험한 처지에 빠질 수 있기에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깨어 있어야 하고 선거에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
<
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