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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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2021-12-21 (화) 허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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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당신이
고개를 저어도
손사래를 쳐도
빨간 윗도리를 입어도
큰 소리로
아니라고 말해도
당신은 결국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동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허영자 ‘노년’

노을이 아름다운 것처럼, 묵은 술이 향기로운 것처럼, 오래된 장이 맛난 것처럼, 고목이 피운 매화를 최고로 치는 것처럼 늙음이 꼭 외로운 것만은 아니었지요. 빨간 옷 입고 손사래 칠 일이 아니었지요.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이 묻고 섬기던 시절 있었지요. 자부심 서린 눈빛으로 경험과 지식과 지혜의 상징이었던 적이 있지요. 절기마다 농사짓는 법을 알려주고, 오랜 전통을 알려주며, 공동체의 기둥이던 노인들이 있었지요. 어느 날 텔레비전이 아버지가 되더니, 인터넷이 만인의 스승이 되더니, 당신의 몫이 사라졌지요. 말하면 꼰대, 말 없으면 잉여가 되었지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당신은 모든 사람의 마지막입니다. 반칠환 [시인]

<허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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