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가 다 인연이라고 한다. 인연은 불가(佛家)에서 유래된 단어로 모든 것이 생기고 소멸하는 데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어서, 우주 만물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을 인(因)이라고 하며, 인을 일으키는 여러 간접적인 조건을 연(緣)이라 구별한다.
따라서 ‘선악불이(善惡不二)’라고 선악은 모두 인연에 의하여 생긴 것으로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등 무차별한 하나의 이치로 돌아간다는 말이고, ‘삼생지연(三生之緣)’은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깊은 인연으로 부부간의 인연을 이르는 말이며, ‘무연중생(無緣衆生)’은 불보살과 인연을 맺은 일이 없는 중생을 일컫는 말들이 있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보면 이 ‘인연’이란 것이 ‘선연(善緣)’이든 ‘악연(惡緣)’이든 쓸모가 있어 다 좋다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모두가 다 인연과 자연(自然) 다시 말해 우주자연(宇宙自然) ‘우연’의 산물 아니 선물(膳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상황이 많이 달라져 거의 모든 관계가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언제 다시 대면으로 돌아갈 수 있을는지 미지수이지만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는 끌림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리니.
영어로 화학작용을 케미스트리(chemistry) 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궁합(宮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이나 사람은 서로 끌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될 수 없다. 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얼마 전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선 기업마다 ‘고스팅(ghosting)’ 과 ‘노-쇼 (no-show) ‘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요식업이나 항공업계에서는 예약 고객이 연락도 하지 않은 채 나타나지 않아 예약부도를 내는가 하면, 일반 기업체에서는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본다고 해놓고 나타나지 않는 ‘면접 고스팅’ 도 있었다.
유령처럼 보이지 않게 사라진다는 의미로 특히 연인 사이에서 갑자기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리는 행위를 뜻하는 이 용어는 온라인 사전 ‘딕셔너리 닷컴’이 2016년 처음 사용하면서 세상에 알려져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그 답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끌림’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기계화 되고 경제와 자본의 논리로 운영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착취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한, 그 어떤 열정이나 애정도 생겨날 수 없다. 참된 인간관계의 회복 없이는 일다운 일이나 사랑다운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사람은 끌림이 있을 때 ‘죽어도 좋아’라며 미친 듯이 몰입할 수 있다.
요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거리 두기가 모든 사회생활에 파급되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사람들의 숨통이 트여있어 천만다행이다 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문을 닫으면 마음에 드는 책을 읽고, (인터넷) 문을 열면 마음에 드는 손님을 맞이하고, 문을 나서면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조선 중기 학자 신흠(申欽, 1566-1628)이 그의 시 ‘소박한 인간 삼락’에서 하는 말이다.
이를 천지인(天地人) 삼락(三樂)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책을 통해 별처럼 많은 사상과 교류하고 삼라만상의 자연과 친해지면서 (유튜브를 통해서라도)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임을 발견하는 즐거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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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