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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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돈 주고 물을 마시게 되었을까?

2021-12-13 (월) 박명희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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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무슨 물이든 마셔도 괜찮았다. 체육시간이 끝나거나, 신나게 놀던 우리들은 수돗물엔 치아에 좋은 불소성분이 있다는 선생님 말을 믿고, 운동장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시고, 각 반 학생주번의 중요한 임무는 커다란 노란주전자에 수돗물을 채우는 것이다. 계곡 위쪽에선 물놀이와 목욕을 해도, 흐르는 물은 저절로 깨끗해진다고 아래선 마시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한다. 몇년이 지난 뒤부터는 좋은 물을 뜬다고 커다란 물통을 차에 싣고 다니고, 어른들은 여러가지 검사에 합격한 좋은 약수를 아침마다 배낭 가득 떠왔다.

물론 옛날에도 봉이 김선달에게 얼떨결에 속아서 대동강물을 사먹었지만, 지금은 당연히 수돗물과 버리는 하수도 물도 돈을 낸다. 게다가 수돗물을 마시면 큰일 날 것처럼 마시는 물은 정수기를 쓰거나 따로 돈을 주고 사서 마신다. 그래도 물을 사는게 일반화 된지는 오래지 않고 아직도 아깝고 뭔가 찝찝하다. 예전에 물을 돈 주고 사야하는 이상한 이유를 묻는 엄마에게 외국은 물보다 맥주나 포도주가 더 싸다고 하니, 그렇게 마셔대니 취해서 말도 꼬부랑, 글씨도 꼬부랑, 머리도 꼬불거린다며 보리차나 숭늉을 주셨다.

모임이 끝나면 마시다 만 물병들을 쏟고 찌그리면서 아까워서 대신 마실 수도 없으니 내 마음도 구겨진다. 조금이라도 죄의식을 덜고 싶어서 내 주변은 어떤지 살펴보았다. 운동하는 이들 대부분은 개인 텀블러를 많이 갖고 다닌다. 자연친화적인 젊은 부부 집에 몇번 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일회용 컵이 없다.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며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준다. 다음에 우리집에 왔다가 가는 길에 거기에 시원한 미숫가루를 타서 줬더니 좋아한다.


여행을 가보니 무엇이든 부족하면 저절로 아끼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추운 북유럽인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니 한여름에 조금 나오는 산딸기나 버섯, 애기사과도 아껴먹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이킹 해적이 되었다고 한다.

물이 부족하고 가뭄에 시달리는 곳에서는 모래바람 속에서 물이 없어 말라빠진 염소에서 겨우 짠 젖을 넣어 끓인 옥수수죽과 염소고기를 모래와 함께 먹는다는 것조차 정말 힘들어보였다. 몇 시간을 가축과 함께 걸어서 샘물을 찾아 마시고, 무거운 물통을 머리에 이고 돌아오는게 여인들의 가장 중요한 일이니 그들에게 빨래와 목욕은 사치라고 한다.

무엇을 아껴야 잘 살까 생각하니, 우선은 내게 중요한 음식, 물, 전기를 아끼겠다고 결심했지만, 주변엔 모두 아껴야할 것 투성이다. 무엇이든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쓴다)를 생각하며, 얼마동안은 정신차려 처마 밑 물받이에 모은 물로 텃밭에 물을 주고, 세탁기도 한번만 돌리고, 물 받아서 세수와 양치질을 하려고 하지만, 어느 날인가 뜨겁다며 고무장갑 끼고 뜨거운 물을 콸콸 틀고 그릇을 헹구는 나는 ‘생각하는 동물’이 맞는지 의심이 간다.

<박명희 /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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