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리 특수산업부 장관.
# 구두닦이 소년에서 장관으로
인생 역경의 산 증인을 소개하겠다. 한인으로서는 메릴랜드 주 정부 최고 직에서 근무하는 지미 리 특수산업부 장관은 잔잔한 미소에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다. 그의 인자한 성품과 거침없는 출세가도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를 은수저라 오해한다. 사실 그는 흙수저다.
존스 합킨스 대와 조지타운 법대를 졸업했으니 부모의 도움이 지대했으리라 믿지만 그 또한 모두 자비로 졸업했다. 전설적인 준 리 태권도 사범의 양자였다는 사실로 인해서 양아버지의 후원이 많았으리라 오해하시는 분도 있지만 오히려 30년 전 준 리가 사업 파산에 이르렀을 무렵 자신의 본업을 접고 양부의 사업을 구원했다.
그의 친부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 유명 대학 총장까지 역임하신 ‘강’씨다. 그러나 생부는 사생아(Love Child)였던 그를 단 한번도 챙기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 상당히 알려진 연예인이었지만 혼외 자녀를 낳은 후 지미 리가 6세 때 두 어린 자녀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무거운 걸음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외할머니 품에서 자라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한남동 길거리에서 구두닦이도 하며 힘겹게 살았다. 13세 때 누이 손을 잡고 어머니 초청으로 버지니아 땅을 밟아 따스한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그는 심한 심적 갈등을 겪는다.
# 혼외자의 설움
미국에 와서 보니 그의 어머니는 준 리 사범과 결혼해 밑으로 두 새 동생을 두고 있었다.
당시 준 리 사범은 탁월한 사교 능력으로 미 정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태권도 도장을 우후죽순처럼 차리고 있었다.
“Nobody bothers me”라는 태권도 TV 광고로 유명해진 이부 동생이 방송에 출연할 때나 양부의 각종 태권도 행사 때마다 지미 리는 늘 생모와 양부의 눈치를 보면서 뒷전에서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서자와 같은 설움을 가슴에 묻고 살던 그는 사춘기 고등학생 시절 큰 싸움에 연루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가까스로 졸업을 하고 집을 나온다.
애국자이며 교육자인 동시에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듯 보이는 양부의 싸늘한 이중성과 칼날 같은 눈빛이 견디기 힘들었다 한다.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목젖 깊이 삼켜야 했던 설움들…. 23년 전 모친이 암으로 돌아가시던 마지막 순간 그녀는 지미의 손을 꼭 잡으며 두 이부 동생을 부탁했고, 책임지겠노라고 하자 모친이 한없이 우셨다고 한다. 아들에게 단 한번 생부에 대한 언급 없이 그녀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얼마 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양부 준 리 사범도 운명을 달리 했다. 지미 리 장관은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자신과 누이를 미국으로 초청해준 준 리 사범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라며 창틀 너머로 눈길을 돌리는데 그 그 모습에 내 눈가가 뜨거워졌다.
# 확신에서 오는 용기
확신이 부재한 곳에서 용기를 찾기는 힘들다.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를 담담히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지난 세월 걸어왔던 겨울 바다가 보였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읽을 수 있었다. 부끄러움보다 진실성의 중요함을 보여주는 그의 용기는 가족과 한인사회를 뛰어넘어 끝없이 도전하는 의지를 대변하는 듯했고 높은 경지에 이른 자기 성찰이 엿보였다.
‘한국 사위’ 래리 호건 주지사 실에서 근무하며 주 의회에 주기적으로 소수민족들의 비즈니스 동향을 보고해야 하는 중책이어서 그는 시간이 금 같은 인물이다. 그런 바쁜 일정에도 젊은이들을 위해 볼티모어 소재 로욜라 대학에서 경제 경영학도 가르치고 있다.
태권도 7단에 탁월한 언변의 그는 나의 골프 파트너이며 술친구이기도 하지만 워낙 바쁜 일정 탓에 18홀을 다칠 기회가 드물다.
# 한인들의 Next Steps은?
정부 조달 사업과 소수 민족들의 참여에 대해 묻자 주어진 계약조건을 충족시키는 준비(Prerequisite)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조달 사업의 특색과 장점이 일단 사업을 따내면 안정적이며 큰 문제가 없는 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흑인, 스페니쉬, 중국계들이 한인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정부 조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메릴랜드 주가 걷어 들인 Sales Tax를 보면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회사들은 45% 상승한 반면 6만5천 개에 이르는 기존 오프라인 중소 회사들은 25% 하락세를 보였다고 한다. 많은 한인들이 오프라인 업체를 운영하기에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주류 언론에 그가 몽고메리 카운티 군수로 출마한다는 소식이 있어 주위 분들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차후 계획을 묻자 백악관에서 좋은 소식이 있을 수도 있다며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주류사회에서 인정받는 그를 우리모두 적극 지원하여 보다 큰 물에서 더 큰 꿈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역경을 뛰어넘어 확신과 용기가 필요한 이 시기에 당신의 꿈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문의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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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리 장관은 65세로 서울 한남동에서 출생해 13세 때 미국 이민을 했다. 워싱턴 & 리 고교, 존스 합킨스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했으며 현 메릴랜드 주 특수산업부 장관이며 로욜라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