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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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한국말, 영어

2021-11-22 (월) 김은영 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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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부의 이야기다. 남자는 여기서 태어나 한국말도 못하고 한글도 못 읽는데, 여자는 늦게 미국에 와 기본적인 영어만 겨우 하는 상황이었다. 남자는 박사학위까지 있는 똑똑한 사람이어서, 혹시 한글 배울 마음이 있다면 가르쳐 주겠노라고 자청을 했다. ‘가나다’부터 시작했는데 역시 세종대왕께서 만든 한글은 과학적이고 쉬워서인지 한 시간 만에 떠듬떠듬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글은 이렇게 쉽지만 한국말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같이 살면서 매일 쓰는 방법 외에는 가르칠 길이 없는 듯하다. 요즈음 한국 TV를 보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다들 언어의 천재가 아닐까 싶다.

우리 조카는 부모가 열심히 한국학교를 데리고 다닌 덕분에 한글을 느리지만 읽을 수는 있는데, 뜻은 모른다. 조카며느리는 많은 친척들에 둘러싸여 자라서 한국말을 별 어려움 없이 알아듣고 말도 하나, 한글은 못 읽는다. 좀 나이가 들어서 배우려니까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다나. 한글로 된 레서피를 보면서 요리를 할 때면, 조카가 떠듬거리며 읽고 조카며느리는 ‘아! 이렇게 하라고?’ 하며 알아듣는다. 기가 막힌 조합의 부부다.


여기 미국에 와 영어를 써야하는 우리들, 어찌어찌 의사는 통하고 살지만, 하다못해 손주들과도 제대로 소통이 어렵다. 그 애들이 보통 말하는 속도로 쏟아 부으면, ‘천천히 다시 말해봐’ 해야 좀 알아듣는다. 자기들끼리 빨리 말할 때에는 주제가 뭔지도 알기 어렵다.

애들이 어렸을 때, 내가 서툰 영어로 전화를 하는데 아들애가 옆에 앉아서 손가락을 꼽으며 센다. 내가 내는 ‘음, 음’ 소리를 세었다나? 막 화를 냈다. “나도 너처럼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웠다면 잘 했을 거야. 내가 영어 못해서 너희들을 학교를 못 보냈냐?” 아들이 미안해하며 내 영어에 대해서 다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른 되어서 미국에 온 우리들이 영어 좀 못 하는 건 당연하다. 좀 더 떳떳하게, 당당하게, 모르겠으면 쭈뼛거리지 말고, 다시 한 번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는 게, 못 알아들었으면서도 아는 척 지나가서 손해 보는 것 보다는 낫다는 걸 경험에 의해 알게 되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영어를 좀 잘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내 짐작에는 그분들도 영어보다는 한국말로 시원하게 떠드는 걸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김은영 전 살렘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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