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우리 회사에서는 파워포인트로 발표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대신 모든 발표는 글로 쓰세요.”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내린 명령이다. 이 한마디에 직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이과 출신 엔지니어들은 거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CEO)의 명령이니 어떻게 하겠는가. 회사를 옮기기 전에는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명령을 내렸을까. 파워포인트를 보면서 말로 발표하는 것은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전달할 위험이 크다. 글로 쓰면 생각이 정리된다. 아마존에서는 발표자의 A4 6쪽짜리 논문을 모두가 조용히 읽고 난 후 회의가 시작된다. 더 나아가서 신제품 발표는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 자료 형식으로 써야 한다.
필자는 글 쓰는 것을 힘들어 한다. 어떤 때는 정말 글쓰기가 싫다. 그런데 어떻게 교수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교수라고 다 공부하기 좋아할까. 공부에 한이 맺혀서 교수되기로 결심한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세상에 시험 치는 것 좋아하는 교수는 없다.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은 학술 논문 쓰는 것보다 더 더욱 힘들다. 익숙한 전문용어를 포기하고 풀어서 써야하기 때문이다. 중2가 이해할 정도로 쉽게 글을 쓰려면 내용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과 말하는 형식으로 글을 써나가는 것이다. 자신과 말하는 것을 녹취하는 방식이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방식으로 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글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발표 과제나 리포트 과제를 내줄 때 딱 세 가지만 요구한다. 원고 분량, 발표 시간, 그리고 발표 형식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요즘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제출하는 리포트가 표절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인공지능(AI) 검색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건 교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학생 입장에서는 점점 힘들어지겠지만.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완벽하지가 않다. 어떻게 인터넷에 떠있는 그 수많은 정보를 다 대조해볼 수 있겠는가. 사실 표절이 난무하는 이유는 교수가 리포트 과제를 내주는 방식에 있다.
표절을 방지하는 좋은 방법을 공개한다. 첫째, 학생들이 리포트를 제출하게 한다. 둘째, 서로 다른 학생의 리포트에서 동의할 수 없는 세 개의 포인트를 지적하게 한다. 셋째, 그 비판을 수용한 리포트를 다시 수정해서 제출하게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학생에게 그 글에 대한 비판을 요구한다. 또 수정한 글을 제출한다. 수정 자체를 표절할 수는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을 사이버 공간에서 모두에게 공개한다는 것이다. 학생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에 달렸다. 첫째, 얼마나 비판을 날카롭게 했는가. 둘째, 남의 비판을 잘 수용해서 글을 수정했는가. 글을 수정하는 것은 다시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것을 정리해서 글로 제출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사고가 탄생한다.
회의석상에서 발언을 잘 안 하는 직원들이 있다. 아무리 발언을 하라고 독려해도 묵묵부답이다. 반면 항상 발언대를 독점하는 직원도 있다. 아예 발언하면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내성적이고, 후자는 외향적이다.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이럴 때는 각자의 생각을 글로 쓰는 시간 3분을 주고 그것을 사회자에게 보내라고 해보라. 그동안 회의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직원들이 놀라운 질문과 아이디어를 글로 제출하는 경우가 나온다. 글로 쓰는 회의도 말로 하는 회의처럼 해보라. 리더는 형식을 규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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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