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노력을 강화키로 한 미-중 공동합의는 분명 진일보한 전향적 조치이지만 현재로선 작은 첫 발걸음에 불과하다. 양국의 이번 공동합의에는 파리기후변화협정에 앞서 지난 2014년 오바마 행정부가 사전협상을 통해 마련한 구체적 목표가 담겨있지 않다. 하지만 세계의 양대 경제대국이자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 사이의 진지한 대화 재개를 시사했다는 점에서 워싱턴과 베이징의 합의는 기후변화 대응에 새로운 추진력을 제공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벌써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양국의 갈등관계 속에서 나온 이번 합의는 앞으로 미국의 외교정책이 직면하게 될 핵심 딜레마를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과연 미국은 지구촌 전체의 시급한 당면과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추어야할까, 아니면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베이징과의 경쟁에 주안점을 두어야할까?
유리 프리드먼이 애틀랜틱지 기고문에서 지적했듯,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세계 각국의 안보와 번영, 그리고 자유는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21세기의 기본적 진실”이라며 “우리 모두는 사상 유례 없는 글로벌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한다”고 선언했다. 사실 기후변화, 팬데믹, 사이버전쟁과 사이버보안 등 녹록치 않은 숱한 쟁점을 감안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협력 없이 이 같은 사안 해결에 진정한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추구하는 기존의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미 무역과 테크놀로지 및 대만과의 관계설정에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대중정책 기조를 그대로 수용했다. 이같은 대중정책의 두 가지 접근법 가운데 경쟁에 초점을 맞춘 후자는 프리드만이 지적하듯 국제관계의 개선과 재건에 방점이 찍힌 협력전략과 갈등을 빚는다. 어느 특정 국가가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류 공동의 문제가 점차 몸집을 키워가는 현재 상황에서 중국과의 상호협력에 초점을 맞춘 접근법이야말로 대중관계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유일한 경로다.
전임 행정부는 진보주의자들과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에 아예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에 이들 두 가지 접근법 사이의 충돌이 없었다. 트럼프에게 개방적 무역시스템과 우방국과의 연합 및 인권을 중시하는 외교정책은 이를 악용하는 다른 국가들에게 일방적인 이익을 안겨주는 잘못된 접근법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와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온 몸으로 끌어안았다. 이처럼 편협한 미국우선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워싱턴은 국제사회의 규칙과 규범을 깨뜨렸다. 트럼프를 필두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과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을 포함한 우익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국제적 제도와 규칙 및 가치가 자국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바를 행동에 옮기는데 제약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지배하는 세계를 선호한다. 다시 말해 우익 포퓰리스트 리더들은 세계화와 개방적 무역시스템, 유럽연합은 물론 나토까지 해체하길 원한다.
반면 바이든은 개방적이고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질서를 추구하는 미국의 전통적 외교정책을 선호한다. 지난주 필자와 가진 CNN 인터뷰에서 백악관국가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반은 대중외교정책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는 미국은 물론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민주주의 우방 및 파트너 국가들의 이익과 가치에 호의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 미국이 추구하는 국제환경은 “세계인권 선언에 명시된 기본적 가치와 규범을 존중하는, 개방적이고 공정하며 자유로운 국제경제체제가 국제협력체의 틀 안에서 지켜지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에서 협력과 경쟁이라는 서로 상충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현재 설리반의 인도-태평양지역 담당 수석 보좌관인 커트 캠벨은 지난 2019년 설리반과 공동으로 외교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문제의 핵심은 협력과 경쟁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을 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의 대중정책의 열쇠를 쥐고 있을 법한 이들의 공동 에세이는 군사와 정치 및 경제 영역에서의 사려깊고 신중한 접근법을 옹호한다.
그러나 양극화된 워싱턴의 정치환경을 감안하면, 백악관의 주인이 누구이건 대중관계처럼 발화성이 강한 이슈에 대해 깊은 뉘앙스를 지닌 세련된 접근법을 취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포린 어페어즈 에세이에서 설리반과 캠벨은 냉전과 현재 상황 사이의 단순한 유추를 거부하면서도 수십년간 지속된 기나긴 싸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고 주장한다. 설리반과 캠벨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경우처럼 과학과 테크놀로지 및 기반시설에 대한 정부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미국의 재건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들은 또한 우방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필자의 생각에 냉전의 핵심 교훈은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친 소련 정권을 타도하거나 베트남 혹은 중앙아메리카의 우익 독재자들을 지지했기에 미국이 승리를 거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승리비결은 평화와 번영, 자유를 보장하는 국제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든 국가들이 여기에 동참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었다. 미국 외교정책이 달성한 이토록 귀중한 성과가 베이징을 상대로 일시적이고 전술적인 이득을 얻으려는 근시안적인 시도로 말미암아 희생된다면 그것은 중대한 실책이자 역사적인 비극이 될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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