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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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의 10월, 분노하는 노동자들

2021-10-29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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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 구약성서에 그려진 완벽한 공존의 모습이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면 이런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이사야서는 말한다. 강하다고 사납지 않고 약하다고 겁먹지 않는 세상. 힘(돈, 권력) 있음과 없음이 그냥 다름인 세상은 가능할까.

노동시장의 힘있는 소수와 힘없는 다수,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시장의 기본원리는 수요공급의 법칙.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으면 값은 올라가고, 공급이 넘치면 값은 떨어진다. 노동수요는 폭증하는 데 공급이 미치지 못하면서 근로자들이 ‘귀하신 몸’이 되었다.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노동자 우위의 고용시장이다.

시작은 복직 거부였다. 팬데믹 여파로 실직했던 근로자들이 비즈니스 문을 열어도 일터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봄 코비드-19 규제가 풀리고 경제는 회복국면으로 들어섰는데 고용주들은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었다. 주정부 수당에 연방정부 지원금까지 더한 넉넉한 실업수당 때문에 실직자들이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고 일각에서는 빈정댔지만, 9월 초 연방지원금 종료 후에도 인력난은 개선되지 않았다. 그 많던 노동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 고용주들은 임금 인상에 보너스까지 얹어주며 직원 구하느라 애를 태웠다.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은 퇴사 물결, ‘대대적 사퇴(Great Resignation)’이다. 연방 노동통계국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 430만명이 직장을 그만두었다. 전체 취업자의 2.9%라는 기록적 숫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현상에 ‘대 사퇴’라는 새로운 용어까지 탄생했다.

그 결과 요즘 고전하는 부서는 각 기업 인사과. 채용도 어렵고 직원 잡아두기도 어렵다. 담당자들을 특히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근로자들의 ‘유령놀음’. 면접 보기로 하고 나타나지 않고, 합격하고 출근하지 않으며, 며칠 출근했다가 말도 없이 사라지는 ‘유령’ 근로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담당자들이 이런 어려움을 소셜네트웍에 토로하면 반응이 재미있다. “고용주들은 늘 근로자들에게 함부로 해왔으면서, 이제 근로자들이 좀 그렇게 하기로서니~” 라는 반응이다.

세 번째 현상은 줄 파업. 10월이 피크였다. 미 전국에서 대략 10만 명의 노조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거나 파업을 결의해서 ‘파업(Strike)의 10월(October)’이라는 신조어(Striketober)가 만들어졌다. 캘로그 공장직원 1,400명, 트랙터 제조사 존 디어 직원 1만명이 파업을 했고, 카이저 퍼머넨테 의료직원 2만4,000명이 파업을 결의했으며, 6만명 영화 TV 스탭 노조가 파업을 결정했다가 사측과의 잠정합의로 일단 주춤한 상태이다.

복직 거부로, 사퇴로, 파업으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자들의 반란이다.

고립되고 봉쇄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팬데믹, 멀쩡하던 친지들이 코비드-19에 감염돼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팬데믹, 그 19개월을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았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언제 끝날지 모를 삶을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 - 가치의 문제이다.

근로자들의 반란도 이런 성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꾹꾹 참으며 하던 일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결단, 가족과의 시간 혹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커리어를 바꿔야겠다는 결심,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조건의 푸대접은 당연한 게 아니라 부당하다는 자각 … 삶의 가치에 대한 개별적 인식변화가 어느 순간 노동시장에 변화의 물길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연방지원금으로 얼마간 버틸 재정적 여유를 갖게 된 것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이런 예언을 했다. “100년 후 영국(선진국)은 경제적으로 4~8배 더 잘 살게 될 것이다. 원하면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될 것이다. 물질적 욕구가 완벽하게 충족되기 때문에 돈을 좋아하는 것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한 100년 후가 바로 2030년이다. 불과 몇 년 후인데 지금 우리의 삶은 예언과 멀어도 한참 멀다. 쉴 틈 없이 일해도 먹고 살기가 팍팍한 것이 서민들의 삶이다. 그럼에도 케인스의 예언은 맞았을 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의 물질적 욕구를 채울 만큼 충분한 물질/돈이 있을 지도 모른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우주에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느라 1분에 254만 달러씩 쓰지 않았는가. 세상의 돈을 극소수가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주주들에게 수십억 달러를 벌어주면서 정작 우리는 땅콩 몇 개를 위해 투쟁한다”고 10월 파업에 참가했던 존 디어의 한 직원은 말했다. 미국 억만장자(708명)의 순자산 총액은 4조 7,000억 달러(8월 기준)로 3억 3,000만 미국인구 중 소득하위 50%의 자산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대기업 최고경영자의 보수는 일반직원의 300~400배. 팬데믹 와중에 소득양극화가 더욱 극명해지면서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노동시장의 예사롭지 않은 지각변동이 노사관계의 긍정적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고용주가 피고용인을 사납게 지배하는 구조가 조금 헐거워지기를, 고용주들이 직원 귀한 줄 알게 되기를, 그래서 표범과 어린 염소가 함께 하는 공존, 그 비슷한 상생의 광경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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