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오징어 게임은’ 이제 거의 보통명사화 되어있다. 아다시피 그 소재는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세계’이기 때문에 그 개연성이나 체감율이 순식간에 전 세계화되어버렸다. 그런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은 문사철(文史哲)의 어귀를 조금만 서성거렸어도 수십 년전부터 이미 나와 있던 답이다.
일확천금의 상징인 복권 당첨에 대한 기사는 언론에 자주 나온다. 얼마 전 신문에 눈에 띄는 생경한 내용을 따라 지도를 찾아봤다. 7억달러짜리 복권(메릴랜드 사상 최고액, 미 복권사상 5번째)이 400가구가 사는 로나코닝(Lonaconing)이라는 동네에서 나왔다. 가을 단풍 여행지로 익히 알고 있는 컴버랜드에서도 15마일 떨어진 폐광촌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곳은 부자주인 메릴랜드 주에서 최빈곤 동네중의 한 산골마을이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타지에서도 ‘돈 좀 나누어달라’고 소동이라는 기사였다. 드라마 오징어를 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할 것이다. 당첨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도 복권 판 가게에 찾아와서 진치고 앉아서 하소연과 애걸복걸을 하는 모양이다.
나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누구누구를 돌볼 겨를이라도 있으랴만, 떠나온 조국, 분단된 조국의 산하 그리고 듣기만 해도 눈물겨운 한겨레 한핏줄…, 갑작스럽게 제20기 워싱턴 평통협의회 회장에 임명되어서 동분서주하다보니 벌써 1개월이 훌쩍 넘어버렸다. 통일에 대한 몸부림이 조금 보였던지 그러면 ‘네가 한번 해봐라’하고 맡겨진 듯하다. 그래서 짬을 내서 하루 한 분씩 만나서 조언과 충고를 듣는다.
‘통일은 전쟁을 해서 이긴 쪽이 집어 먹으면 된다.’ ‘유엔 북한대사와 미 국무장관과 식사자리 한번 만들어봐라.’ ‘교황 방북을 한번 시도해보면 좋겠다.’ ‘평양에는 언제 가냐, 나도 같이 가고 싶다.’ ‘북미 민간 친선대회를 워싱턴에서 해봐라.’ ‘우선 너희들끼리라도 잘 좀 지내라. 제발 싸우지들 말고.’ ‘우리 국민도 어려운데 북한을 돕자고? 그걸로 핵을 만든다며?’ ‘여러 말 필요 없다. 말 통하는 우리민족끼리 눈치 보지 말고 단번에 합해 버리면 그게 통일이다.’
모두 다 듣고 보니 ‘야, 이거 참 야단났네.’ 어느 한 가지라도 워싱턴 평통회장에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만 역대 대통령들도 못다 한 어마무시한 일들을 어찌 다 할꼬, 하루를 365일같이 살아도 힘들 것 같다.
아내는 비좁은 한국의 아파트 사이를 잘도 운전하더니 미국에 와서는 후진이나 갓길 주차를 거의 못한다. 후진하다가 자꾸 부딪친다. 차량의 주 용도는 대부분 직진이지만 후진도 상당히 중요하다. 언젠가 뒤에 트레일러를 하나 달고 산골짜기 구부러진 외길 폐차장에 갔다가 되돌려 나와야 하는데 뒤에 트레일러가 달렸으니 되돌릴 공간도 없고, 왔던 길을 후진으로 빠져 나와야 하는데 하다하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을 수소문해서 달려온 어느 분이 아주 여유롭게 빠져 나오는 걸 보면서 감탄했던 생각이 난다.
평통 회장 1달만에 느낀 현실은 분단 76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트레일러 후진처럼 험난해 보이기만 한다. 한반도 통일은 내 차 뒤에 트레일러가 한 대도 아니고 세 개쯤(미국, 중국, 일본) 달려있는 것 같다. 그러나 희망인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고 하는 말씀들이 거의 99%다. 선배 평통자문위원님들, 큰일 하셨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안 될 이유’를 찾기보다는 ‘되는 방법’을 찾아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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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워싱턴 민주평통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