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 중에 느닷없이 큰뿔 산양(Bighorn Sheep) 일가족과 맞닥뜨렸다. 산 모퉁이를 도는 순간 딱 마주쳤다. 서로간의 거리는 불과 20~30미터. 이 야생양 한 두 마리를 LA 근교 산에서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날은 모두 11마리. 덩치가 송아지 보다 큰 수컷부터 무릎 높이를 간신히 넘길 정도인 어린 것까지 대가족이다. 이들은 가파른 정상쪽으로 오르기 위해 등산로를 가로지르려던 참이었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벌어진 뜻밖의 조우여서 순간 산양도 사람도 얼어붙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지켜보고 선지 얼마나 지났을까. 팽팽한 긴장을 깨고 아빠, 엄마, 장남쯤으로 보이는 큰 놈 3마리가 천천히 등산로를 건너 비탈로 올라섰다. 이들은 서서히 사람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양들의 절박감이 전해져 왔다. 위험했다. 마침 반대편에서 내려오던 두 등산객이 이 광경을 보고 멈춰 서 있었다. 재빨리 뛰어가 이들과 합류했다. 난리가 난 산양들, 우당탕탕 작은 놈은 자빠지고 미끄러지고 하면서 급히 경사를 기어 올라갔다. 위기 상황은 이렇게 끝났다.
주말 하이커들이 많이 찾는 마운틴 볼디에는 샛길 같은 등산로가 하나 있다. 급경사여서 종일 몇 팀 다니지 않아 호젓하다. 이 비탈을 한 시간 반 남짓 오르면 유독 새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입에 맞는 열매들이 많아 그런지 모르겠다. 푸드덕대며 자기들끼리 잘 지내던 새들은 사람이 나타나면 갑자기 부산하고 요란해진다.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평화를 깬 불청객으로서는 미안한 일. “그래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 -. ” 이런 말들을 내뱉으면 새들이 조용해진다.
믿거나 말거나, 사람이 말하는 동안은 짹짹거리는 개체의 수가 급감한다. 말을 멈추면 재잘거림은 다시 시작되고-. 이런 류의 ‘대화’를 여기서 한 5분 정도 이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은근히 그 작은 친구들을 놀려 먹는 게 재미있어서 다음 주말 다시 찾아가도 상황은 비슷하게 전개된다.
산행 중에 처음 만난 새에게 무슨 말을 하랴. 짹짹짹, 새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말 그대로 해석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아시스의 성인 프란치스코는 새들과도 대화했다고 한다. 그림이 어느 정도 짐작된다. 서로 상대의 말을 어느 수준으로 연역해 냈는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일화 두 개를 나눈 것은 야생동물은 모두 사람이 다가가면 불편해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사람이 접근했을 때 이상행동이 감지되기 시작하는 거리는 동물 마다 다르다. 작은 포유류나 새는 50~100미터, 매나 독수리 같은 큰 새는 400미터, 큰 사슴인 엘크와 무스 등은 1,000미터, 반 마일 이상만 접근해도 이상행동이 감지된다. 집 정원의 작은 새들도 20미터이상 떨어져야 편하다고 한다.
이같은 거리는 얼마 전 미국 대학의 동물생태학자들이 지난 40여년간 발표된 관련논문 300편이상을 분석하고 취합해 내놓은 것이다. 영 근거없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동물과의 거리두기가 중요한 것은 이게 무너지면 재앙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식인 사자가 마을을 덮치고, 백두산 근처의 호랑이가 민가로 내려오는 것은 이들과의 거리가 붕괴됐기 때문이다. 자연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이 밀고 들어가면 문제가 생긴다. 급증한 산불의 원인 중 하나로 무분별한 개발이 꼽히는 것도 한 예다. 나무가 있어야 할 곳에 집이 들어선 것이다.
동물과의 거리두기에 실패했을 때 인간이 입는 피해는 때로 치명적이다. 이번 팬데믹이 생생한 증거다. 코비드 19의 기원과 전파경로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으나, 동물에게서 기원돼 동물을 거쳐 사람에게 전파된 것은 확실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역으로 사람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농장의 밍크나 동물원의 호랑이 등에게 옮긴 예도 확인됐다.
사람과 동물사이를 오가는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은 이번처럼 재앙적일 수 있다. 사스, 에볼라, 조류독감, 돼지독감 등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들. 에이즈 병원균 HIV도 침팬지 유래설이 유력하다. 현재 세계보건기구에 등재된 인수공통전염병은 250여 종, 특히 지난 2000년대 이후 사람에게 발생한 주요 전염병의 75%이상은 동물에게서 왔다.
얼마 전 연방정부는650억 달러를 투입해 다음 팬데믹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팬데믹 조기 경보 체제를 갖춰 이번 같은 대혼란을 막겠다는 것이다. 필요하지만 차선책이다. 원인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팬데믹의 근본 대책은 동물과의 거리 지키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람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자리를 지키고, 정해진 거리를 둘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두기에 실패하면 하늘의 별도 재앙이 된다.공룡 등이 사라진 대멸종도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한 것이 원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적정 거리두기는 사람 사이에도 필요하다. 너무 가까워져서 문제가 되는 인간관계도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킬 것은 지키는 관계가 건강하고, 오래 유지될 수 있다. 거리두기는 코로나 예방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필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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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