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6. 14:00 신체 튼튼한 29살의 네덜란드 여성 ‘오렐리아 브라우어스’(Aurelia Brouwers)가 정신질환을 명분으로 의사가 건네준 독극물을 스스로 마시고 생을 마감함으로써 전 세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12살 때부터 경계선 인격장애, 애착 장애, 만성적 자살충동과 우울증 등을 복합적으로 앓고 있었던 오렐리아는 이처럼 안락사를 결심하기 전 ‘나는 하루하루 숨 쉬는 것 자체가 고문일 정도로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롭다’고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임종을 앞둔 환자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적 권리로는 대체 두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환자의 산소호흡기나 영양공급 호스, 투석과 같은 보조장치를 제거하는 이른바 ‘존엄사’이고, 나머지는 적극적으로 약물 투입 등을 통해 신체적 고통을 줄이고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안락사’이다.
오렐리아처럼 의료진이 개입하여 생명을 단축시키게 되면 ‘조력자살’이니 ‘살인방조’니 하면서 법적으로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락사 관련 입법이 필요한데 그중 제일 앞서가는 나라로 네덜란드를 꼽을 수 있다. 네덜란드는 2002년 제정한 안락사법을 통해 “호전될 가능성이 없으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합리적 대안의 부재” 이 두 기준을 충족하는 환자들에게 안락사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오렐리아와 같은 중증 정신질환자뿐 아니라 불치병에 걸린 12살 미만의 어린이들까지 부모의 동의하에 안락사가 허용된다. 이렇게 생을 마감한 사람의 수가 2020년 한 해 동안 네덜란드 전체 사망자의 4.3%인 6,938명에 달한다고 한다.
일본은 나고야 고등법원 판례를 통해 임종을 앞둔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본인이 명료한 의식 상태에서 안락사를 승낙했으며, 의사의 시술로 환자의 고통이 완화되고, 시술방법이 윤리적으로 타당할 때 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안락사 지침을 삼고 있다.
미국은 오리건,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뉴저지, 워싱턴 등 10여 개 주에서 불치병 환자들에 한해 안락사(MAID, Medical Aid in Dying)를 허용하고 있다. 워싱턴 주의 경우 18살 이상의 성인이 의사 2명으로부터 6개월 이하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의사소견서를 받고, 15일 간격으로 2회에 걸쳐 구두로 안락사 의사를 밝혔으며, 2명의 증인 입회 하에 서면으로 안락사를 요구할 것을 필요로 한다. 하와이 주는 여기에다 최소 20일의 대기기간과 정신 감정까지 요구하고 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생명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의료진이 개입하여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는 안락사 문제는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돼 있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측은 생명연장 기술이 늘어났다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라고 하는 것은 환자 자신을 위해서나 이를 지켜보고 간병하는 가족 입장에서 볼 때 차라리 안락사가 생명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로마 교황청 등 각 종교단체 중심의 반대 측은 안락사를 인정하게 되면 중증 환자들이 가족이나 주위 이해당사자들로부터 무언중 그렇게 하도록 강요를 받아 ‘현대판 고려장’이 될 위험성이 다분하고, 무엇보다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사람을 치료해야 할 의사들이 오히려 환자의 자살을 도와주는 것은 의사의 윤리 면에서 가당치 않다고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뉴욕주도 이 같은 세계적 추세를 감안하여 안락사 법안을 상정하였다고 한다. 총 150명 중 1/3에 달하는 40여 명의 하원 의원들과 총 63명 중 16명의 상원 의원들이 지지를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과연 법안이 통과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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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