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원치 않았던 곳에 둥지를 틀었을까. 어처구니 없는 나의 팰팍 정착기는 지면상 생략한다. 이사 오자마자 겪은 불행이 팰팍의 행정적 불합리함 때문이라는 의구심이 오랜 기간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학교에 입학을 하고, 그 혼란스러움이 보다 구체적인 형태들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체계적이지 못한 행정과 경륜이 풍부한 전문가가 부족한 교육 시스템안에서 학부모로서 바랄 수 있는 건 선생님의 친절함 뿐이었다.
언어 소통 능력이 떨어져 가정과 학교의 지원이 보다 필요한 아들은 학교를 거부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늘 해맑게 웃던 작은 생명체가 누군가의 손길을 거부하며 펄럭이던 필사의 날개짓을 “원래 의사 소통이 잘 안되는 아이들은 학교를 싫어할 수 있다” 라고 웃으며 넘기시는 선생님의 태도는 ‘무지’에서온 친절함 이었다. 한번도 아이들과 의사 소통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본인들의 잣대로 만들어진 경험과, 전문성에 기반하지 않는 위험한 착각속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외부 전문가들은 이런 환경이 아이들의 불안감을 높인다고 우려했다.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가수인데 노래를 못한다는 거예요.”
다소 오만한 듯한 이 문구를 인용하기 조심스럽다만, 아이들을 다루는 일들은 엄청난 책임을 인지해야 하는 직업이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지는 양육과 사랑의 의무만큼은 아니더라도 학교는 아이들에게 가정 다음으로 큰 사회이다. 우리는 ‘교사와 학교 관계자들’에게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남의 아이들을 사랑해 달라고 하는 억지가 아닌, 아동 심리, 즉 모든 생명체가 가진 본능적 심리-행동 분석의 기본만이라도 알아주길 바란다. 의사 표현이 서툰 아이는 일년이 다가도록 거부하다 결국 본인만의 방식으로 그 이유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고, 원하던 대로 학교와 분리되었다. 그 후 겪었던 하나하나의 일들은 하나하나의 고통으로 다져져, 놀이터에서 두세살짜리 아이들을 상대로 인종 차별을 하던 백인 여성과 큰 목소리로 욕설을 섞어가며 싸우는 ‘아줌마’ 가 되어있음을, 굳이 원치는 않았지만 앞으로 필요할 수 있을 철가면을 선사받았음을, 소유를 구하지 않았던 것들이 나의 한부분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엄마’라는 페르소나에 나를 가두었음을 받아들였다.
내가 아이와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조심스러운 이유는 의외로 ‘학부모들의 오해’에 있다.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고 아이-부모, 즉 가정 환경과 양육방식이 다른데 “당신 아이와 우리 아이가 처한 문제가 비슷하니 나도 그런식으로 해결하렵니다”라고 하시는 부모님들이 꽤 많다. 나와의 만남 후 본인 자녀에게 요구할 필요가 없는 학습과 성취를 요구하거나, 선생님들의 수업 흐름을 방해 할 수 있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학부모를 보았고, 또다시 ‘학부모 친구’ 무리를 떠나 무인도로 돌아가야 할 필요를 느꼈다. 선의의 조언과 친목이 오해를 낳을 바엔 아이와 함께있는 무인도가 좋았다. 아이든, 부모든, 선생님이든, 우린 모두 각자의 공부를 최대한 자주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덜컥 팰팍 교육위원 후보로 출마했다. 무인도에서 섬마을이 아닌 대도시로 이사해 버린거다. 팰팍 교육위원 후보 정수진, 아수라장이라던 팰팍 정치판에서 선거 출마후 여기저기서 “아무도 믿지 마라” 라는 말들을 참 많이 듣는다. 내 판단력을 흐릴 수 있는 소리들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몇몇 분들의 지성을 믿자. 내 여과기에 걸러져 나온 사람들을 믿는 바보가 되는것이 정체성에 상처입히는 것보다 낫다. 옳고 그름을 보다 현명하게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며,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 그리고 그 현명한 판단력과 단단한 정체성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 우리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학교를 꿈꾼다. 정말 아직은 ‘꿈’이다.
현재의 팰팍 학교 현황을 보면 현실과 공약 사이의 간격이 클 수 밖에 없다. 나는 조금씩 전진하는 바퀴에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 사이에 흐르는 윤활류가 되어 삐걱이는 소리를 줄이며 더 원활히 나아가도록 밀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력서에 빼곡히 적힌 다양한 경력들로 증명할 수 없는 ‘교육’이라는 세계, 누가 선출되던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학교를 위해 힘써 주십시요. 본업들로 바쁘시더라도 열심히 일해주시는 것이 제일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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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뉴저지 팰팍 교육위원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