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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도 선천적 복수국적을 안다

2021-10-14 (목)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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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태생 한인 2세 여성도 한국 복수국적자가 되어 공직 진출 등에 불이익이 발생하고 있다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한 바, 사전 심사를 통과하였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헌법소원 기사가 미 전역에 알려지면서 오히려 한인 2세 아들을 가진 어머니들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출생할 당시 아버지나 어머니가 영주권자였고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자녀는 완전히 미국 시민인 줄 알았다는 것이 대부분의 전화 내용이었다. 이번에 우연히 기사를 보고 이제서야 아들이 선천적 복수국적이 된 것을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한 어머니는 “아들이 미군 장교인데 조만간 주한 미군으로 가는데 이를 어쩌면 좋겠냐”고 하소연 하였다.

또 어떤 어머니는 “아들이 이번에 ROTC를 지원하려고 하는데 복수국적이 되어 어떻게 해야 되냐”고 가슴 아파했고 다른 어머니는 “아들이 지금 고등학생인데 공부를 잘하여 내년에 사관학교에 진학하려고 하는데 복수국적이 되어 고민이다” 등 수많은 사연들이 쌓이고 있다.


그동안 현재 공직에 있는 한인 2세는 신원조회 때 이미 복수국적이 아니라고 했으나, 앞으로 신원조회를 해야 할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은 이제 복수국적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으니 신원조회 시 “복수국적을 가진 적이 있냐”라는 질문에 ‘Yes’라고 해야 할지 ‘No’라고 해야 할지 갈등이 커져가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미주 동포는 아직도 자기 자녀가 한국 국적법에 의해 복수국적자가 된 것조차 모르고 있으며, 그저 남의 일처럼 상관이 없는 일로 여기다가 막상 자신의 자녀 문제가 터진 뒤에서야 실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이제 미국 정부도 한국의 선천적 복수국적 제도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복수국적으로 인한 불이익과 피해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피해 사례를 살펴보면, 미 국무부의 권위있는 풀브라이트 장학생 선발 기준은 미국 시민권자이어야 하고 복수국적자는 신청 자격이 없다.

따라서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아예 장학생 신청조차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비록 선천적 복수국적자가 아니더라도 출생 당시 부모가 미국 시민권자였음을 증명하기 위한 부모의 시민권 증서를 못 찾아 서류 제출을 포기한 사례도 있다.

미 국무부의 풀브라이트 장학생 지원에 대한 안내문에는 한국의 선천적 복수국적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놓았으며, 출생 시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면 복수국적자가 되어 신청 자격이 없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복수국적이 될 수도 있으니 반드시 한국 총영사관에 문의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미 국무부의 안내문이 한국 총영사관보다 미국 태생의 선천적 복수국적 남성과 여성에 대한 내용을 영어로 더 잘 홍보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나 해외동포들보다 선천적 복수국적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우려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총영사관의 한 관계자는 잘못된 선천적 복수국적 제도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나의 설명에 대해 “아직 시기상조가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과연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귀를 막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애가 타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의 문의에 대해 “남성에 관한 헌법소원에서 승소하여 내년 9월30일까지 국회에서는 선천적 복수국적에 관한 개정법을 만들어야하는데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만 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해외동포 2세들에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국 국적을 자동으로 부여하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국적이탈 절차를 밟게 하는 것은 권리 없이 의무만 요구하는 헌법 위반이다. 하루속히 부당한 현행 국적법을 개정하여 해외동포 2세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까지 국적 자동상실제도를 채택하여야한다. 이는 곧 해외동포의 각국 주류사회 진출을 장려하고 또한 해외 인재 등용을 도모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과 한국인의 세계화이다.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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