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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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피어오르는 희망의 싹

2021-10-05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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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괴롭히는 전염병은 많다. 그중에서도 천연두는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병의 하나다. 20세기에만도 3억에서 5억에 달하는 인류가 이병에 걸려 죽었다. 천연두는 또 이런 질병 중 유일하게 박멸된 병이다. 세계 보건 기구가 박멸된 것으로 확인한 질병에 ‘우역’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것은 소 등 가축에게 걸리는 병이라 인간과는 무관하다.

어떻게 인간은 극심한 공포의 대상이던 천연두를 지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었을까. 그 첫번째 이유는 천연두는 걸리면 증상이 뚜렷해 환자를 격리시키는 것이 비교적 쉽다. 그리고 이 병원체는 동물이 아닌 인간만을 전염시킨다. 인간을 감염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때 동물 몸에 숨어 있다 다시 나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세번째는 한 번 걸렸다 살아남으면 평생 면역력을 갖는다. 다시 말해 두번 걸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또 치사율이 높아 감염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효과적인 백신이 나왔고 이것이 전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됐다. 이런 이유 등으로 1980년 이후 천연두는 지구 상에서 더 이상 보고되지 않고 있다.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어떨까. 코로나는 천연두와는 다르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증상이 다른 질병과 비슷해 감염자를 가려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병원체를 동물과 공유하기 때문에 인간끼리의 감염을 100% 막는다 해도 동물에 퍼져 있다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또 한번 걸려도 면역이 일시적이다. 그리고 치사율이 낮아 한 사람의 감염자가 여러 사람에게 병원체를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 사태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백신 접종을 늘리고 치료제를 개발해 중증 환자 발생을 최대한 막는 것이다. 다행히 두 가지 방향 모두 희망의 싹이 보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연방 정부 공무원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100인 이상 고용 기업에게 직원의 백신 접종이나 매주 코로나 검사 의무화를 발표한 이후 백신 접종율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가주나 뉴욕의 경우 이와는 별도로 의료 종사자 등에 대한 백신 의무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일부 교사나 경찰, 의료직 종사자, 소방관들이 이런 행정 명령이 불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나 규모는 생각만큼 크지 않으며 대다수는 정부 지침에 따르고 있다. 가주의 경우 의료 종사자의 90%가 백신 접종을마쳤고 뉴욕의 경우 의료 종사자의 92%가 최소 한 차례 백신을 맞았다. 뉴욕은 1주일 사이 접종율이 8% 포인트 올랐다.

유나이티드 항공의 경우 직원의 99%가 백신을 맞았고 1%인 600명만이 이를 거부, 해고 절차에 들어갔으나 이중 절반은 결국 백신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휴스턴의 감리교 병원의 경우 직원의 0.6%만 끝내 접종을 거부하고 사임하거나 해임됐다.

백신 접종율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해 감염자수는 줄어들고 있다. 9월초 7일 평균 1만8,000명에 육박하던 미국내 감염자수는 이제 1만명대로 떨어졌다. 가주내 감염자 수도 1만5,000대에서 7,000대로 내려왔다. 대유행의 기세가 한풀 꺾인 기색이 역력하다.

접종율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중증 환자나 사망자 수는 줄어든다. 지금 중병으로 고생하고 있거나 사망자의 절대 다수는 백신 미접종자들이다. 접종자가 늘어날수록 그런 사람 수는 그만큼 줄어든다. 하루 속히 접종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백신을 맞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는 일단 병에 걸렸을 경우 중증과 사망을 막아주는 치료제 개발이 시급하다. 머크사는 지난 주 초기 감염자의 병원 입원과 사망 확률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몰누피라비르’라고 불리는 이 약은 머크가 연방 식품의약국에 긴급 사용 허가를 신청한 상태라 올 말쯤이면 시판될 전망이다. 이 약 이름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천둥의 신 소르가 휘두르는 해머 ‘몰니르’에서 온 것으로 바이러스 유전자에 이상 신호를 일으켜 자기 복제를 막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 약은 백신보다 생산이 용이해 빠른 시일내 대량 생산과 보급이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치료제 여러 개가 현재 개발 중이라 내년에는 다양한 형태의 효과 있는 치료제가 시판될 가능성이 높다.

백신 접종율이 좀 더 높아지고 이런 약들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 지난 1년 반 동안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도 독감 수준으로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길고도 길었던 코로나와의 전쟁이 인간 승리쪽으로 기울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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