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100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추석을 보냈다. 추석이면 햇살이 변했다. 찌르듯 쨍하던 열기는 사라지고 차분하게 명징한 햇살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었다. 이제는 추석이 되어도 폭염이다. 기후가 뒤죽박죽이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 기후변화이다.
그날, 더위를 피해 태평양 해변을 드라이브하면서 쉘 실버스틴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를 생각했다. 나무와 아이가 등장하는 그림 동화책이다. 어린 시절 아이는 매일 나무를 찾는다. 그네도 타고 매달리기도 하며 나무와 같이 논다. 나이가 들수록 나무와 함께하는 시간은 줄고 요구는 많아진다. 아이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니 나무는 가져다 팔라며 사과를 내어주고, 집을 지어야겠다고 하니 목재로 쓰라며 가지를 내어준다. 멀리 항해를 해야겠다고 하자 나무는 배를 만들라며 몸통 전체를 내어준다.
세월이 흐른 후 아이는 노인이 되어 돌아오고, 밑동밖에 남지 않은 고목은 반갑게 그를 맞으며 앉아서 쉬라고 몸 전체를 내어준다. 가없는 희생의 존재로 나무는 부모, 나무와 소년은 부모와 자식관계에 종종 비교된다.
실버스틴이 어떤 의도로 이런 슬픈 동화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땔감 종이 목재 장만을 위한 벌목, 지하자원 확보를 위한 채굴, 산속 경치 좋은 곳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주택단지 개발 … 나무는 베어지고 숲은 파괴되며 생태계는 교란된 지 오래다. 인간은 개발의 이름으로 자연에 당당하게 요구했고, 자연은 아낌없이 내어주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어머니 자연도 감당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환경파괴와 더불어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기계문명의 발달은 지구온난화로 이어지면서 기후변화라는 재앙을 몰고 왔다. 땅과 바다, 동식물 등 자연을 개발의 수단으로만 여기며 한없이 착취한 인간중심주의, 끝 모르는 탐욕에 지구는 병들었다. 대기도, 땅도, 물도 오염되었다.
‘오염’은 그대로 인간에게로 되돌아와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애초에 자연과 인간은 지구행성의 공동 주인,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고 있다. 공기가 병들면 인간은 병든 공기를 호흡할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기후변화에 신속히 대처하지 않으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대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9월 초 200여 의학저널들은 전례가 없는 공동사설을 공개했다. 산업시대 이전에 비해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1,5도 올라간 고온 그리고 생물다양성의 지속적 손실은 공중보건에 파국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경고이다. 코비드-19 팬데믹으로 기록적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류건강 최대 위협은 기후변화라고 과학자들은 강조한다.
기후변화는 대기오염, 극심한 열기, 식량위기, 감염성 질환, 정신건강문제 등을 초래함으로써 인류건강을 위협한다고 그들은 지적한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사망만 연간 360만~900만 건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다.
인류는 어떻게 해야 기후 대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답은 나와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는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규제하고 청정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 필수인데 미국을 비롯, 세계 각국은 여전히 말만 앞서고 행동이 더디다.
아울러 근년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나무심기다. 탄소배출 감축과는 별개로 이미 배출된 탄소를 흡수하는 방편으로 나무를 심자는 것이다. 지난해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은 기후변화 대응책으로 ‘나무 1조 그루’ 캠페인을 발표했다. 세계 각국의 식목 프로젝트들과 연계해 나무를 심고, 기존의 삼림을 보호함으로써 푸른 지구를 만들자는 취지이다.
1조 그루 나무심기에 적극 참여하는 인사는 침팬지 연구 권위자이자 인류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이다. 그는 나무를 ‘하느님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한다. 일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하며 강우를 돕는 나무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1조 그루’란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각자 128그루씩 심어야 도달하는 수량. 목표 달성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나무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인식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다. 각자 한 그루씩이라도 심자, 심고 나서 정성껏 보살피자고 구달박사는 제안했다.
9월은 기독교의 창조절기이다. 이를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등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행동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하느님의 창조물을 위해 기도하고 돌보는 기회”로 삼아야 할 이 절기에 모든 이들은 “지구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라, 하느님이 주신 지구를 위해 의미 있는 희생을 하라”고 촉구했다.
푸른 숲이 해답의 하나이다. 숲은 대기오염물질을 빨아들이는 공기정화장치이자 거대한 탄소 저장고, 동식물에 서식지를 제공하는 생물다양성 지킴이이자 산사태와 침식을 막아주는 버팀 장치이다. 나무 한그루 심는 작은 실천이 모여 숲이 살고 지구가 지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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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