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이곳에서 방앗간을 개조한 집 한 채를 샀다. 매일 아침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소와 양 떼들을 지나 옥수수밭과 초원 사이를 거니는 것이 내 일과다. … 질문도 답도 없이 온몸으로 순간을 살고, 일 년에 사계절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하며 나를 둘러싼 자연과 하나가 되어간다.”
브라질 태생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쓴 ‘방앗간집에서의 하루’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무도 없이 혼자 지내고 싶을 때 작가는 피레네 지역 작은 마을의 방앗간 집으로 간다고 했다.
세계적 작가인 그는 거주지역도 국제적이지만, 보통사람들로 치면 인근 시골의 주말농장쯤 되겠다. 시골에 자그마한 집 한 채 장만해놓고 주말이면 가서 텃밭도 가꾸고 근처 산이나 바다도 즐기는 여유로움은 많은 도시인들의 꿈이다. 직장, 자녀 교육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는 없지만 가끔은 느리고 한갓진 시골생활에 파묻혀 보고 싶은 것이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는 삶의 만족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복닥복닥 붐비고, 범죄율 높아 문을 잠가도 안심이 안 되고, 밤낮으로 경찰차 사이렌소리 울리는 지역에서 삶의 질이 높기는 어렵다. 집값이나 아파트 렌트비 등 주거비 크게 비싸지 않고, 커리어 키워나가는데 좋은 지역이며, 출퇴근 거리 적당하고, 아이들 학군 좋으며, 범죄율은 낮고, 의료시설 잘 구비되어있는 곳, 그래서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은 곳은 어디일까?
US 뉴스 & 월드 리포트가 지난주 ‘삶의 질 베스트 25’ 도시들을 발표했다. US 뉴스는 미 전국 150개 인구밀집 메트로 지역들을 대상으로 연방 센서스국, 연방노동부, FBI 등의 데이터를 분석, 미국서 가장 살기 좋은 곳들을 선정하고 있다. 지난 7월 발표한 ‘가장 살기 좋은 곳 15’에는 콜로라도의 볼더가 1위, 노스캐롤라이나의 랄리와 더햄이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이번에는 ‘삶의 질’에 집중해 각 도시들을 분석했는데, 미시건의 앤 아버가 1위, 콜로라도의 볼더가 2위, 플로리다의 네이플스가 3위를 차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캘리포니아. 샌호제(5위) 산타바바라(6위) 산타로사(8위) 샌디에고(11위) 살리나스(20위) 등 5개 도시가 삶의 질 높은 도시들로 꼽혔다. 이주 계획이 있다면 참고해볼만 하다.
어디서 살면 행복할까? 은퇴가 가까워지면 부쩍 고민하는 문제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는 직장 중심으로 살아야하니 거주지역 선택에 제한이 있지만 자녀들 독립하고 직장에서도 은퇴하고 나면 명실상부 거주이전의 자유가 생긴다. 어디든 가서 살 수가 있다.
미국에서 은퇴자들이 많이 이주하는 곳은 플로리다. 폭설 내리는 시카고나 뉴욕 등 북동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은퇴하고 나면 따뜻한 남쪽 지방, 플로리다로 몰린다. 한인들의 경우는 남가주의 인기가 높다. 남가주 은퇴단지에 가보면 동부나 중부에서 수십년 살다 은퇴한 노년층이 많다. 해양성기후로 사시사철 날씨가 좋은 데다 한인들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LA에서 샌디에고에 이르는 남가주는 미국 속 한국이라 할 만큼 한인들이 많고 한국문화 한국음식 등 한국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곳, 고향 같은 곳이다.
“수십년 ‘미국동네’에서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한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한국음식 먹고 한국말로 대화하며 살고 싶다”고 북동부 소도시에서 은퇴한 한 의사는 말한다. 영어 쓰느라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이 편안하게 모국어로 이야기하는 것만도 노년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한인 인구 많은 곳인 만큼 고교동창, 대학동창 등 죽마고우가 가까이 있어 스스럼없이 자주 어울린다면 노년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