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은 지난 9월1일, 낙태 찬성파들이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텍사스의 ‘심장박동법’ 시행을 금지해달라”며 낸 가처분신청에 대해 소송대상 선정오인 이유를 들어 대법관 5대 4로 신청을 기각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결정은 비록 본안소송이 아닌 가처분신청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의 낙태권을 폭넓게 인정한 현재까지의 판례 태도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낙태 문제는 작년에도 ‘뜨거운 담론 낙태’ 제하로 한번 다룬 바 있지만, 1973년 결정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사건에서부터 비롯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여성의 임신기간을 3분할 한 후 임신 초기부터 6개월까지는 임신부가 중절수술을 선택할 수 있고, 7개월부터 출산까지의 기간에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 권리가 제한된다고 연방헌법을 해석했다.
이 삼분법은 1992년 ‘플랜드 페런트후드 대 케이시’(Planned Parenthood v. Casey) 사건을 통해 의료기술의 발전을 고려, 태아의 생존가능성 시험결과에 따라 융통성 있게 낙태 허용 기간을 정하는 것으로 판례가 일부 대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낙태 금지는 공화당의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였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닐 고서치에 이어 2018년 브렛 캐버노, 2020년 에이미 코니 배럿을 대법관에 앉혀 보수파 6 대 진보파 3으로 대법원 구도가 완성됐을 때 그 초석이 다져졌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의 보수화가 완성되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공화당 우세의 많은 주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 우후죽순처럼 상정되었다. 이중에서도 텍사스가 제정한 ‘심장박동법’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임신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6주부터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대한 낙태까지도 금지할 정도로 가장 까다롭고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텍사스법은 ‘로 대 웨이드’라는 거대 장벽을 비껴가기 위한 하나의 해법으로 소송 주체를 정부가 아닌 개인으로 명시한 것이 특징이랄 수 있다. 즉, 지금까지는 정부가 앞장서 불법 낙태 시술을 받은 여성이나 시술을 행한 의료진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담당해왔는데 텍사스법은 정부 대신 시민을 앞세워 일차 민사소송을 제기토록 하고, 성공할 경우 1만 달러의 보상금 지급 조항을 마련한 것이다. 소송 피고는 낙태 시술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 준 우버 운전기사, 낙태비용을 지원한 자선단체, 심지어 가족까지도 모두 그 대상이 된다.
이렇게 해놓으면 낙태 찬성파들이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할지 주적 개념을 희석시킬 수 있고, 기존 판례도 정면으로 비껴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텍사스 당국의 예측대로 낙태병원이 텍사스의 재판부 판사들을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소송대상이 잘못 선정됐다며 신청을 기각시켰던 것이다.
한편 시술주체인 의사나 낙태비용을 지원한 자선단체 등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1회 시술당 1만달러 보상금이 걸려있다면 ‘현상금 사냥꾼’들의 감시망을 도저히 피하기 어렵다고 보고 낙태 시도를 체념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회기 내에 텍사스법과 비슷한 미시시피의 낙태금지법 위헌 여부를 심리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낙태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이 조만간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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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