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빅블러 시대

2021-09-18 (토) 김영미 / SF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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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세상의 기술적 변화는 휴대폰이나 전자제품의 진화를 통해서이지만 얼마 전 신형 전기차를 살펴보면서 자동차 상세 설명에 소프트웨어적 기능들이 많이 포함된 것을 보고 내가 차를 사는지 전자기기를 사는지 의아하고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 자동차산업도 이제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능도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유통업, 금융업, 제조업 등과 같은 업종의 경계 구분이 모호해지는 현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 경제 분야에서는 국가 간의 경계들도 무너지고 있는 현상을 빅블러(Big Blur)라고 하며, 미래학자 스탠 데이비스의 저서 ‘블러: 연결경제에서의 변화속도’(1999년)에 나온 용어로 혁신에 의해서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의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다.

네이버 쇼핑의 경우 오프라인 라이브 방송을 추가해 온오프라인의 융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 아마존이 오프라인 홀푸즈 매장, 무인 상점인 아마존 고 등과 같이 오프라인 사업까지 확장하는 것, 스타벅스의 모바일 결제시스템인 사이렌 오더의 미국 내 사용인구가 2,000만 명이 넘어서고 충전금액도 20억 달러로 추산될 정도로 금융업을 방불케 하는 영역이 확장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인터넷 기업들도 금융, 게임, 온라인 쇼핑, 웹툰 등의 다양한 사업을 넘나드는 모습에서 고유 업종이 사라진 무한경쟁 시대로의 전환을 본다. 최근 금융회사들이 게임업체 등과의 연합을 모색하듯이 수익만 창출된다면 물불을 안 가리고 너도나도 새로운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끼리 합종연횡한다. 물론 모험정신과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으로 진입한 누군가에겐 또 다른 기회로 다가올 여지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우리의 환경변화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박탈감보다도 더 우울해지는 건 외적 환경에만 몰두하느라 우리의 내면에, 가치있는 삶에 더 중요한 마음과 생각에 전혀 눈길을 줄 여유가 없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인 것 같다.

1인 가구의 증가, 독거노인, 고독사 등 우리 삶을 대변하는 여러 용어들에 묻어있는 외로움들을 돌아보고, 거창한 변화들 앞에 가려져 다소 사소해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지닌 의미심장함을 되새겨보며 살아야 할 것 같다.

<김영미 / SF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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