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법회 후에는 기쁨으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종교적 수행에 관한 책을 읽거나 사유 하면서 느끼는 기쁨이 있다. 도반들과 함께 공양하고 대화를 나누며 웃고 즐거워하는 불자님들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된다.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기쁨이 있다. 삶이 기쁨이다. 정신적 물질적 다양한 대상을 통해서 기쁨을 느낀다. 기쁨을 주는 대상은 셀 수 없이 많으나 그것들은 몸의 감각 기관과 두뇌의 사고 작용을 통해서 나에게 인식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기쁨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기쁨은 한편으로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기쁨을 누리는 주체라고 알고 있는 몸과 기쁨을 주는 대상들로 해서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기쁨도 순간 순간 변화한다. 기쁨을 느끼면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고, 그 집착은 마음에 긴장을 일으킨다. 기쁨은 다양한 조건들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변해가는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것이다.
오늘의 기쁨은 맑고 상쾌한 날씨와 음식을 준비한 여러 사람들의 노고와 법회 후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법회를 마친 후의 근심이 없는 가벼워진 나의 마음이 조화를 이루면서 생겨난 것이다.
끝없이 변하는 인연들이 만나서 생겨나고 변하고 사라지는 이 작은 기쁨에서 고정됨이 없이 나누는 공의 진리를 본다.
종교와 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자유를 주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불교에서 그러한 기쁨은 지혜와 자비에서 온다.
자비는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다. 지혜는 모든 존재의 바탕을 바로 보고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우리의 자유가 침해되고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나를 위하여 남의 기쁨을 빼앗기 때문이다.
모든 폭력은 지혜와 자비에서 참 기쁨이 생기는 것을 모르는 데서 나온다.
사랑은 참 기쁨을 일으키는 가장 큰 힘이라고 모든 성인들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지혜없음과 고통의 경험에서 오는 두려움은 자기 집착에 빠지게 하고 우리에게 사랑의 실천은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서 사랑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비워야 한다.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면 자연스러운 평화와 기쁨은 가려진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면 우리 마음에 기쁨과 삶의 의지가 생기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것을 비우는 마음 다스리기는 괴로움 대신 기쁨을 선택하는 일이다.
한 스님이 선방에서 좌선을 하는데 처음에 너무 다리가 아파서 끊임없이 일어나던 망상도 사라지고 아픔으로 가득했다. 순간 순간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만둘 수 없어서 온 힘을 다해 견뎠다. 그런데 좌선이 끝났을 때는 그 해방감이 여태까지 경험한 어떤 기쁨 보다 컸다. 고통의 크기 만큼 벗어남의 기쁨이 컸다. 그것은 대상이 주는 감각의 기쁨보다도 크고 새로운 생명력과 자유의 기쁨이 있었다. 이것은 기쁨과 고통이라는 상대성을 벗어나지 못한 중생의 기쁨이지만, 욕망과 집착의 불이 꺼진 열반을 참 기쁨이라 하는 가르침을 생각하게 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열반을 향한다. 그것은 모든 것으로 부터의 자유이며, 궁극의 기쁨이다. 지금 세계의 많은 고통들은 참 기쁨을 모르고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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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공 스님/ 한마음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