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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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말하지 않는가

2021-09-17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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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희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 눈으로 보고 싶고, 손으로 잡고 싶고, 따뜻하게 보듬고 싶은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에게 가서 닿고 싶은 마음, 연결되고 싶은 본능이라는 생각이다. 물리적으로 가서 닿을 수 없을 때, 우리는 말로써 연결을 추구한다.

20년 전 9월 11일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비행기 안에서 탑승객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 일은 사랑하는 이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긴 것이었다. 테러 당한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건물 안 대혼란 속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을 감지한 그들은 본능적으로 아내/남편에게, 어머니/아버지에게 혹은 연인에게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남겼다. ‘사랑 한다’고, ‘보고 싶다’고.

그렇게 그들은 떠나고 ‘연결’에의 욕망은 산 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9.11 테러 20주년을 맞아 많은 미디어들이 희생자 유가족들을 인터뷰했다. 중년이었던 부모는 노인이 되고, 젊었던 아내/남편은 중년이 되며, 어린아이였던 자녀는 청년이 되었지만, 그렇게 세월이 흐르도록 많은 유가족들은 상실의 아픔을 넘어서지 못했다. 홀로 키운 아들이, 딸이 잘 자라서 졸업/취직/결혼을 하는 특별한 순간들, 아니면 그저 평범한 어느 아침, 상실의 통증은 날카롭게 되살아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는 더 이상 여기에 없지만 커다란 공백으로, 부재하는 존재로, 가족들은 여전히 ‘그’와 함께 살고 있었다.


9.11 추모행사를 앞둔 몇 주 전 공영라디오방송 NPR은 뉴욕의 브루클린 브리지 공원에 구식 공중전화 부스를 설치했다. 강 건너에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우뚝 서있던 곳, 지금은 새 빌딩이 건너다보이는 곳이다. 20년 전 거짓말처럼 사라진 ‘그’에게 못 다한 말,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말들을 음성메시지로 남기라고 NPR은 유가족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사전 허락을 거쳐 6명의 메시지를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어린 두 아들을 남기고 떠난 남편에게 아내는 아들들이 “정말 멋지게 잘 자랐다, 당신을 꼭 빼닮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는 “서두를 생각은 없지만 당신을 다시 만날 날을 고대 한다”고 했다. 11살 때 아빠를 잃은 딸은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며 “부상당한 아빠가 다 나으면 돌아올 줄로 알았다”며 흐느꼈다. “하이, 아빠”로 말문을 연 아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때 “아빠가 (큰 고통 없이) 빨리 갔기를 빌었다”고 했다. 누이를 잃은 한 남성은 “그 자리에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우리가 찾지 못해서,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하나같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 ‘너무나 보고 싶다’ ‘우리와 여기 같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함께 하자’는 말들을 했다. 시리도록 투명한 슬픔,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아픔의 메시지들이었다.

NPR의 공중전화 부스는 일본의 ‘바람의 전화’를 본뜬 것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유명해진 전화 부스이다. 이와테 현의 작은 해안마을 오쓰치에 사는 조경전문가 사사키 이타루는 2010년 연말 사촌형을 암으로 잃었다. 당시 60대 중반이던 사사키는 애도의 장치로 공중전화 부스를 구해 정원에 세웠다. 고인이 써놓은 시 ‘바람의 전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 “바람의 전화는/ 가슴에 말을 하네/ 바람에 속삭이라/ 내가 들으리니” - 수신기능 없는 전화기를 들고 바람에 이야기하노라면 사촌형과 연결된 느낌에 그는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는 몇 달 후 대지진과 해일로 그 지역은 폐허가 되었다. 그 작은 마을에서만 1,3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마을 전체가 비탄에 빠지자 사사키는 전화 부스를 공개했다.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충격과 상실감, 후회 분노 자책으로 괴로운 가족들, 그리움으로 하루하루가 고문인 가족들, 못 다한 말들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방문객들은 선 잘린 검정색 구식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복받치는 감정을 옆에 놓인 노트북에 쏟아냈다. 사랑과 추억과 후회 그리고 잔잔한 기쁨에 관한 글들이었고 사사키는 이를 묶어 책으로 냈다. 해안가 바람 부는 언덕 위의 전화 부스를 찾은 사람은 이제까지 수만 명, 그들의 사연은 여러 영화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비슷한 부스는 세계 곳곳에 등장했다. 지난 3월에는 콜로라도 아스펜 산중에도 생겼다. 코비드-19으로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을 위해 한 아티스트가 마련한 치유의 전화이다.

삶의 고단함에 치여서, 삶의 번잡함에 정신 팔려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삶에서 모든 것은 한시적이라는 사실,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상실/사별은 예정되어 있고 그 때가 언제일지는 예측불허라는 사실이다.

삶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삶이 당장 내일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후회 없는 삶이 가능하다. 이 생에서 가장 소중한 그/그들과 확실하게 함께 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 ‘사랑 한다’는 말을 왜 지금 하지 않는가. 이 순간을 왜 즐기지 않는가.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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