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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코로나 쇄국

2021-09-15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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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외국과 왕성하게 무역을 전개한 고려와 달리 건국 초기부터 쇄국정책을 고수한 나라였다. 오백년간 은둔의 왕국을 자처해온 조선은 19세기 말 스스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데 실패했다. 이때 떠올려지는 인물은 흥선 대원군이다.

당시 조선의 조정은 무능력했고, 대원군 이하응은 위정척사 사상으로 똘똘 뭉쳐 외국과의 교역을 무조건 저지했다. 흥선 대원군은 흔히 쇄국정책으로 알려져, 사람들은 흥선 대원군을 떠올릴 때는 으레 옹고집을 연상한다.

실제로 흥선 대원군은 척화비를 전국 각지에 세워 서양 세력과의 수교 거부 의지를 세뇌시켰다. 흥선 대원군에게 왜 쇄국정책을 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는 피폐해진 조선을 바로잡고 나라를 지켜내기 위함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1876년 강화도 강제조약까지의 쇄국으로 조선은 아깝게도 개화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대원군의 자부심은 요즘 젊은 층에서 말하는, 소위 한국이 하는 건 뭐든지 최고라고 하는 그런 사고가 아니었을까. 개화파는 양반 사대부 중에서도 소수였는데, 그들 말대로 개방정책을 폈다면 그 당시 일본과 대등한 나라를 충분히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조선시대도 아닌데 21세기에 대원군이 폈던 쇄국정책 상황이 한반도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코로나19 전파에 대한 공포로 지난해부터 쇄국중이라고 한다. 갈수록 강화되는 북한의 쇄국조치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려 대량 기아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입국을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초강력한 방역조치로 쇄국이나 다름이 없는 현실이다. PCR테스트니 뭐니 필요 이상의 장벽을 만들어 입국하는 미국 교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전 세계 확산으로 세계 각국이 문을 한때 닫았지만, 이제는 각국의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다. 싱가폴, 일본 정부 등이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 코로나19와의 공생을 선택한 영국과 스웨덴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자율적 방역 조치로 눈길을 끌고 있다. 회사나 가게 주인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국가가 일률적으로 강제하지 않는 정책이다.

이들 국가들은 경제 활동의 정상화가 계속되면서 대면 서비스를 중심으로 소비가 살아나는 분위기다. 세계 최초로 집단 면역을 시도했다 비난을 받은 스웨덴 정부는 경제 정상화 이후 코로나 19로 인해 사망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규제 조치를 풀고 개인에게 선택을 맡기는 선진국들의 경제 역시 정상화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전 덴마크 국립은행은 덴마크 경제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경기가 정상화되면서 소비도 코로나19 이전으로 회귀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내용이다.

서로가 눈치를 보고 방역이 보편화되면서 모든 것이 멈췄고 아울러 세계 경제도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더 빨리 현실을 파악하고 일찍 깨어나느냐의 싸움인 것 같다. 19세기 국제무역시대에는 누가 빨리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나 순서에 따라 국력의 순위가 매겨졌다. 조선처럼 깨어나지 못한 나라는 뒤쳐질 수밖에 없다.

팬데믹 공포가 너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자유무역주의가 실종되고 신고립주의가 등장했다. 하지만 결국 경제는 심리 아닐까. 우리 스스로도 환자처럼 평생 고립되어 여생을 보낸다면 얼마나 슬플 일일까. 언제까지 두려움 속에 갇혀 살아야 할지 이제는 보는 것도 힘들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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