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엘비스 프레슬리와 트럼프

2021-09-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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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난 지원과 구호를 위해 연방 정부가 푼 돈은 6조달러가 넘는다. 백신 개발에는 400억달러 가까이 투입됐다. 백신 접종자는 인구의 절반 정도, 사망자는 65만여명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가 코비드19 팬데믹을 선언한지 꼭 1년반이 지난 지금의 미국 상황이다. 팬데믹은 언제 끝날꼬? “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이다.

최근 한 저널에 실린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병원 응급실/중환자실 담당 의사의 에세이가 눈길을 끈다.

“작년 2월이후 얼마나 많은 코로나 환자를 돌봤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코로나 환자는 젊어졌다. 기저 질환 없는 환자가 늘었다. 입원환자들의 공통점은 95%가 백신 미접종자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숨져 가고 있는 환자의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한 가지 있다. ‘지금 백신을 맞으면 너무 늦은가요?’ 내 대답은 ‘예스’이다. ‘다른 무슨 방도는 없나요?’ 대답은 ‘노’이다”.

이 의사도 주위에서 백신을 맞든, 안 맞든 코로나 생존율은 99%, 걸려도 죽지는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현장 경험은 그와는 다르다. 미국에서도 코로나에 걸리면 500명중 한 명은 숨진다고 한다. 생존율 99%면 뭐하나, 나 하나 죽으면 사망율 100%인데-.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지금은 백신말고 대책이 없지만 맞을 수 있으나 백신을 맞지 않은 미국인이 8,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이 백신접종 의무화의 고삐를 바짝 당긴 이유다.

새로 개발된 백신에 대한 거부감과 망설임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작용 없는 약이 얼마나 되는가. 역사적으로도 백신 부작용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미접종자 때문에 사회전체의 마비 현상이 한정없이 계속될 때는 문제가 다르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로큰롤의 제왕으로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20대 청년 때 소아마비 백신을 공개 접종했다. 1956년 10월 에드 설리반 쇼에 출연한 그는 함성을 지르는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당시 미국에서는 매년 6만명 정도가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돼, 3만5,000명은 장애인이 됐다. 대부분 어린이들이었다.

하지만 예방주사 접종은 지지부진했다. 처음 개발된 소아마비 백신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당시 틴에이저들의 접종률은 1% 미만. 프레슬리의 공개 접종 후 접종률은 로켓처럼 치솟아 올라 6개월 뒤 80%를 기록했다. 백신 접종을 성공시킨 대표적인 스타 파워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그후 조기 유방암 검사 등 각종 건강 캠페인에 유명 연예인들이 앞장서 성공으로 이끈 예가 적지 않다.

아쉬운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의 조기개발은 트럼프 정부의 공로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 정부가 개발의 공을 전임 정부에 돌리는데 인색한 인상을 주긴 하지만-.

트럼프는 물론 백신을 접종했다. 지난 1월 백악관을 떠나기 전 조용히 맞았다. 비공개여서 한동안 대통령의 접종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코비드19를 감기정도로 말한 그는 코로나 급확산의 원인 제공자로 꼽히기도 하나, 병도 주고 약도 줬다. 그가 만일 프레슬리처럼 지지자들의 환호속에 공개적으로 백신을 맞았다면 정치적 이슈로 변질된 미국의 코로나 상황은 다소 달라질 수 있었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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