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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사설] 주지사 소환 반대(NO) 한다

2021-09-1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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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빠른 코로나 사태 적극 대응, 자영업자 지원대책 등 성과 불구

▶ 당파적 목적으로 시작된 낭비선거, 반대 표시로 민주제도 악용 막아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대한 소환 여부의 찬반을 묻는 ‘리콜 선거일’이 이제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14일 진행되는 주지사 소환 찬반 투표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이에 따른 경제적 타격 등 어려움 속에서 그 결과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의 운명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선거다.

주민 소환 제도는 공직을 맡은 정치 지도자의 임기 중 유권자들이 신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고도의 직접 민주주의 제도다. 유권자들의 투표를 통해 뽑힌 선출직 공직자가 임기 도중 그 직책을 수행할 자격을 박탈당해야 할 만큼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됐을 경우 임기를 다 기다리지 않고 주민들의 표심을 묻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 선거는 사실상 낭비적인 정치 절차, 다시 말해 이뤄질 필요가 없었던 선거라고 볼 수 있다. 뉴섬 주지사의 주정부 리더로서의 직무 수행이 캘리포니아를 위기에 빠트렸다고 할 만한 큰 잘못이 없었는데도 당파적 요인에 따른 정치적 목적에 소환 선거라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가 악용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뉴섬 주지사 소환 운동을 추진한 측에서는 그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대처가 잘못됐고 이로 인해 자영업자 등 비즈니스들이 겪은 어려움과 나아가 심각한 노숙자 문제 등에 그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마스크 착용과 백신 의무화,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한 경제 봉쇄령에 반감을 가진 진영의 불만을 파고들어 소환 선거를 끌어냈다.

그러나 뉴섬 주지사의 정책 방향과 그 직무 수행 과정이 당파를 떠나 캘리포니아를 크게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다. 발빠른 백신 도입과 접종, 그리고 보급률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홍보, 선제적인 코로나 사태 대응이 캘리포니아가 팬데믹 초기의 코로나 핫스팟의 오명에서 벗어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코로나 봉쇄령 속에 자신은 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가진 것 등이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주지사 직무 수행의 큰 흐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발빠른 백신 접종 독려, 공무원들과 학교 관계자들에 대한 접종 의무화,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의 조치는 코로나 사태 대응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대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 팬데믹 사태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개인과 자영업자들을 위한 주정부의 각종 지원 대책도 적극적으로 이뤄져왔다.

현재 캘리포니아의 백신 접종률은 미국 주들 가운데 매우 높은 편이고, 주정부의 방역 가이드라인들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 백신 접종률이 낮은 상당수 주들이 델타 변이의 확산으로 다시 코로나 재유행 위기를 맞고 있는 속에 캘리포니아는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이번 리콜 선거에서 뉴섬의 대안으로 나온 대항마들의 면면도 살펴봐야 한다. 공화당 후보 중 선두로 나선 래리 엘더 후보는 기후 변화와 최저임금 등 민주당 주도 어젠다의 대척점에 서며 강성 보수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는데, 주지사에 당선되면 코로나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지침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만약 실제로 뉴섬의 리콜이 현실화되면 백신 접종 독려가 후퇴하고 마스크 의무화가 폐지돼 방역이 느슨해지는 상황이 되는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캘리포니아 역사에서 주지사 소환을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실제로 리콜 선거를 통해 주지사가 바뀐 적은 단 한 번 뿐이다. 2003년 유례없는 전력대란 속에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그레이 데이비스 전 주지사에 대한 불만이 닷컴 버블 붕괴에 따른 경제 침체와 맞물리면서 소환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배우 출신 정치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선택했었다.

그러나 이번은 당시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캘리포니아의 문제점들은 주지사를 임기 도중에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 경우 캘리포니아에 닥칠 혼란을 생각하면 주민들이 치러야 할 댓가는 너무 클 것이다.

이번 리콜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은 소환 찬반 질문에 ‘노(No)’라고 답하는 것이다. 또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우편투표 용지를 작성해 제출하거나 14일 가까운 투표소에 나가 꼭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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