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11 테러 그리고 20년

2021-09-10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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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아침이었다. 출근 전 TV를 켜니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화면을 메웠다.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광경 - 하지만 현실이었다. 자살 테러범들이 비행기를 몰고 돌진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110층 쌍둥이 빌딩이 화염에 휩싸이고, 뒤이어 무너지고, 워싱턴 D.C.에서는 광활한 펜타곤 건물 한쪽이 붕괴되었다. 초강국 미국 땅에서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심장부가 테러를 당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사태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이날 테러로 희생된 인명은 무려 2,977명.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애도의 물결,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은 불안과 두려움, ‘누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라는 분노 그리고 아픔. 미국은 거대한 감정의 도가니였다.

해일처럼 치솟은 감정의 바다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정점을 찍었다. ‘테러와의 전쟁’ 선포였다. 테러범들과 대화는 없다, 행동이 있을 뿐이라는 부시의 선언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테러주범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원 인도를 거부하는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부시 지지도는 90%까지 치솟았다. 보복과 응징의 일념으로 미국은 단합했다. 미국이 하나로 뭉쳤던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20년이나 지속되며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키고 1조 달러가 넘는 돈을 날리며 실패로 끝나고, 미국은 지금 역사상 흔치 않게 분열되어 있다. 20년 전 그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 전 국민이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빠져있을 때 지도자는 그 너머를 보며 이성적 판단을 해야 했던 게 아닐까.

결말을 미리 본 드라마처럼, 당시의 맹목적이고 호전적인 결정들을 돌아보면 안타깝고 씁쓸하다. 모두가 한쪽으로 치달을 때 용기 있게 그 반대편을 보는 균형의 시각이 있었어야 했다.

아프간 전쟁이 한정 없이 길어지고 9.11 테러와 무관한 이라크를 공격한 배경에는 대통령에게 거의 무제한 무력사용을 허용한 연방의회의 ‘군사력 사용 권한부여(Authorization for Use of Military Force)’ 결의안이 있다. 테러에 가담하거나 관련된 개인, 나라, 조직 응징을 위해 대통령은 필요하고 적절한 모든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전쟁의 장소도 기한도 제한하지 않았다.

9.11 테러 사흘 뒤에 진행된 표결에서 결의안은 일사천리로 가결되었다. 상하양원 통틀어 반대표는 단 하나, 하원의 바버라 리 의원(민, 가주)이 유일했다. 리 의원은 하원 본회의에서 호소했다. “나라가 애도 중인 지금 누군가는 신중해야 한다. 한발 물러서서 잠시 멈춰 보자. 사태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오늘의 결정이 내포하는 바를 찬찬히 생각해보자.”

그의 신중론은 당시 국민정서에 정면으로 거슬렸다. ‘반역자’ 비난과 살해위협이 쇄도해 경찰의 신변보호가 필요했을 정도였다.

9.11 테러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빈 라덴이 대미전쟁을 선포한 것은 1998년이었다. 이스라엘을 감싸며 중동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미국을 그는 ‘뱀의 머리’라고 증오하며 미국인을 죽이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고 설파했다. 또한 미국은 “더 이상 합중국이 아니라 주들로 갈라지고, 미국의 아들들은 시신으로 귀환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빈 라덴의 위험성을 미국 정보기관들은 익히 알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 CIA와 FBI는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백악관이나 의사당 같은 국가 상징물, 월스트릿 같은 미국 자본주의 상징물이 테러 타깃이 될 위험성을 극비리에 경고했다. 문제는 두 기관이 경쟁의식 때문에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것, 그래서 영어도 모르는 테러범들이 테러 1년 8개월 전부터 미국에 와서 비행기 조종기술까지 익히도록 정보망에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빈 라덴은 2011년 제거되었지만 그의 저주는 묘하게도 지금 미국의 현실이 되었다. ‘테러와의 전쟁’ 분위기에 편승해 백인우월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민주 공화 양측은 대화가 불가할 만큼 양극으로 갈라졌고, 미국의 아들딸들은 불과 며칠 전에도 시신으로 돌아왔다. 카불공항 자살폭탄테러로 희생된 13명의 군인들이다. 대부분 스물 갓 넘은 나이로 9.11 테러 당시 갓난아기였던 그들은 역사의 수렁에 발목이 잡혀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조직만을 타깃으로 삼았어야 했다. 해방군처럼 아프간에 진격하고,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없애겠다며 이라크를 공격할 일이 아니었다. 아프간 국민들이 탈레반의 폭정에 고통 받고, 이라크 국민들이 폭군 사담 후세인을 증오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미군을 반긴 것도 아니었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깃발을 들고 가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리라는 망상과 무지, 오만이 문제였다. 그로 인해 치른 대가가 너무 크다.

2004년 보고서에서 9.11 위원회는 미국이 도덕적 리더십의 표상이 될 것을 촉구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미국이 자유와 민주, 평등이라는 가치의 상징이 될 때, 그렇게 진정한 리더가 될 때 허접한 테러분자들의 공격은 방지될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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