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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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디쓴 아프가니스탄 철군

2021-09-0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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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은 완료됐지만 이를 지켜보는 미국인들의 마음은 씁쓸하다. 갑작스런 수도 카불의 함락으로 쫓기듯이 밀려나온 것도 가슴 아픈데 막판에 자살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기막힌 것은 탈레반 군인들이 미군 장갑차에 타고 미군 기관단총을 흔들며 카불 시내를 질주하는 모습이다. 탈레반을 잡기 위해 아프간으로 나른 무기들이 오히려 탈레반의 화력만 강화시켜준 꼴이다.

지난 20년간 미국이 아프간에 쏟아부은 돈은 국방부 추산으로는 1조 달러, 브라운 대 집계로는 2조 달러에 달한다. 수치가 이렇게 다른 것은 국방부는 군사 비용 8,250억 달러, 아프간 재건 비용 1,300억 달러를 쓴 것으로 보고 있는데 브라운대는 20년 동안 전비를 대느라 꾼 돈에 대한 이자와 앞으로 퇴역 장병들의 치료비 등 부대 비용을 더했기 때문이다.

전비 중 830억 달러는 아프간 군 육성에 들어갔는데 이 중 1/3 정도가 군사 장비 구입에 사용됐다.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무너진 것으로 봐 이 중 대부분은 낭비됐으며 군사 장비는 탈레반 손에 넘어 갔으니 사실상 이적 행위를 한 셈이다. 이 중 고급 장비는 주요 부품을 뜯어가거나 프로그램을 사용 불가능하게 해놨다고는 하지만 수천 대의 차량과 수억 발의 탄약은 그대로 남겨졌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미국은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난 후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당 손에 넘어갈 때까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돈을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에 지원해 줬다. 그러나 이렇게 마련된 군사 장비들은 상당 부분 공산당 손에 넘어 갔다. 부패한 장교들은 물자를 받자마자 팔아넘겼고 일반병들은 토지를 무상으로 나눠준다는 달콤한 꼬임에 빠져 총을 든채 공산당에 투항했다.

1945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다시 옛 식민지인 인도차이나 반도로 돌아오자 미국은 이곳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이유로 프랑스에 군사 장비를 지원해줬다. 그러나 1954년 프랑스가 디엔비엔푸에서 항복하면서 이 무기들은 고스란히 월맹군 손에 넘어갔다. 그 후 미국은 20년 가까운 세월 8,400억 달러가 넘는 돈(2019년 달러 기준)을 월남에 쏟아부었지만 1975년 결국 손을 들고 나왔고 남겨놓은 무기는 모두 월맹군 차지가 됐다.

미국이 전쟁을 해 늘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1846년에서 2년간 지속된 멕시코와의 전쟁은 27억 달러의 전비가 들었지만 지금 미국 영토의 1/3에 달하는 가주에서 뉴멕시코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얻었다. 1898년 일어난 스페인과의 전쟁도 100억 달러의 전비가 들었지만 그 덕에 괌과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 같은 스페인 식민지가 미국 손에 들어 왔다.

1991년일어난 걸프전도 비교적 싼 가격에 성과를 올린 전쟁으로 꼽힌다. 1,100억 달러의 전비가 들었지만 미군 사상자는 거의 없었고 무력에 의한 국경 변동은 안된다는 원칙을 확립했으며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그에 반해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믿고 시작한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은 재난이었다. 군사 비용만 1조, 기타 부대 비용까지 합하면 2조 달러가 들어간 이 전쟁은 미군 사상자만 4,000명이 넘게 났을뿐 아니라 이라크는 쑥대밭이 되고 IS 같은 극렬 회교 테러 단체가 활개를 치는 계기만 만들어줬다. 지금 와서 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인적 물적으로 이처럼 큰 희생을 치르고 얻은 것은 거의 없는 전쟁도 드물 것이다.

이런 역사를 되돌아 보면 남의 나라에 함부로 들어가 전쟁을 할 경우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1년 걸프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은 바그다드로 쳐들어가 사담 후세인을 축출할 수 있었음에도 쿠웨이트 영토 회복이라는 원래 목표를 달성한 후 철수했기 때문이다. 노련한 아버지 부시와 브렌트 스코우크래프트 등 보좌관들은 섣불리 이라크에 들어갔다 내부 파벌 싸움에 휘말려 쓰레기를 뒤집어 쓸 것을 알고 있었다. 2003년 이들은 아들 부시를 같은 이유로 만류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월남과 아프간에서의 실패의 근본 원인은 현지인들이 미국 편에서 싸울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지 실정이 본국 지도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주둔 사령관은 윗 사람이 듣기 좋아하는 낙관적인 보고서만 계속 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프간에서의 치욕적인 철수는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지만 아프간 정부가 18개월은 갈 것이란 거짓 정보에 기초해 철군 작업을 추진하다 망신당한 바이든은 최종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곧 9/11 테러 20주년을 맞는 미국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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