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개빈 뉴섬 주지사 소환선거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민주당이 공화당의 2배가 되는 민주당 주에서 큰 실책 없는 민주당 주지사 소환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투표할 것 같은’ 유권자들 중 소환 반대와 찬성은 대략 49% 대 48%로 초박빙이다. 주목할 점은 ‘투표할 것 같은’ 이다. 뉴섬을 몰아내고 싶은 공화당 유권자들의 투표 열기는 뜨거운 반면 민주당 유권자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소환선거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돌아보면 ‘11월 6일’은 뉴섬 주지사에게 특별한 날이다. 비상과 추락의 기점으로써 그가 평생 잊기 어려울 날이다. 첫째는 2018년 11월 6일, 비상의 날이다. 뉴섬은 이날 주지사 선거에서 득표율 62%로 압승을 거두었다. 그날 밤 그는 열광하는 지지자들에게 가슴 벅찬 승리의 연설을 했다. “태양은 서쪽에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활은 우리 쪽으로 구부러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주 상하원을 꽉 잡고 있고, 주민들의 지지도 높은 민주당 주지사로서 그의 정치 앞날은 활짝 개여 보였다. ‘반 트럼프’의 기수를 자처한 그는 친 이민정책, 기후변화와 코비드-19 팬데믹에 대한 과학적 접근 등으로 트럼프와 대립각을 세우며 진보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카리스마, 잘 생긴 외모, 50대 초반의 젊음 - 그는 대륙의 ‘서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다음은 2020년 11월 6일, 추락의 단초가 된 두 사건이 같은 날 발생했다. 이날 새크라멘토 수피리어 법정 판사는 뉴섬 주민소환 단체가 신청한 청원 서명마감 4개월 연장을 허락했다. 팬데믹 봉쇄조치로 서명 받기가 어렵다는 주장이 먹힌 것이다. 이에 뉴섬 측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주지사 직무수행 지지율이 60% 중반을 유지하고 있어서 방심한 것이다. 전에도 몇 번 소환 시도가 있다가 무산되었으니, 이번에도 잠시 타다 말 ‘잔불’ 정도로 여겼다. 2020년 11월 17일이었던 청원서명 확보 마감일은 2021년 3월 17일로 연장되었다.
그리고는 바로 그날 저녁, 뉴섬은 나파 밸리의 고급식당 프렌치 런드리에서 열린 절친한 로비스트의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역시 방심에서 비롯된 실수, ‘잔불’에 스스로 기름을 끼얹은 실수였다. 당시는 팬데믹 방역조치로 4,000만 가주민들이 친지들과의 모임도, 식당 내 외식도 피해야 했던 때. 그런데 정작 봉쇄령 내린 주지사는 마스크도 안 쓰고 파티에 어울려? - ‘위선자’ ‘특권층 의식’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뉴섬을 애초에 싫어하던 유권자들, 그의 사형집행 중단 및 친 이민정책 등에 반대하던 보수 유권자들, 장기화한 봉쇄령에 불만이 목까지 차오른 자영업계 등이 대거 “뉴섬 소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쏟아져 들어온 것은 돈. 가주는 물론 전국의 공화당 큰손들로부터 선거 기금이 쇄도했다. 지지부진하던 소환 청원은 시간과 돈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 오늘에 이르렀다. 두달 후인 2021년 11월 6일, 뉴섬이 어떤 모습일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번 소환선거에서 반드시 투표해야 할 유권자들이 있다. 첫째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민심인데, 현행 가주 주민소환 규정은 민심과 동 떨어진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뉴섬은 소환투표에서 찬성이 반대보다 한 표만 더 많아도 소환 즉 퇴임 당한다. 이 경우 소환선거에 나선 45명 후보들 중 최다득표자가 뉴섬의 남은 임기를 이어받는다. 표가 40여명에게 분산되다 보면 잘해야 20% 득표로 승자가 가려질 전망. 결국 소환반대 민심이 49.99%에 달해도 뉴섬은 쫓겨나고, 20%의 지지를 받은 후보가 그를 대체하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막는 길은 적극 투표하는 것뿐이다.
둘째, 민주당 지지자들은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 이번 선거는 뉴섬의 앞날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앞날에 직결된다. 뉴섬이 소환되고 공화당 주지사가 취임하면 당장 불안한 것이 다이앤 파인스타인 변수다. 88세로 노쇠한 파인스타인 연방상원의원이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공화당 주지사는 자당인사를 후임으로 정할 것이다. 민주 공화 50대 50의 연방상원은 공화당 우세로 바뀌고, 바이든의 정책들은 상원에서 턱턱 걸리면서 차질이 빚어질 것이 불문가지이다.
셋째, 이민자들은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 현재 소환선거 후보들 중 선두주자는 래리 엘더라는 라디오 진행자로 트럼프주의 추종자이다. 젊은이들의 백신 접종, 학교에서 아이들 마스크 착용은 불필요 하다고 주장하고, 기후변화를 부인하며 무엇보다 이민자 옹호정책들에 반대한다. 드리머들의 시민권 획득, 출생 통한 시민권, 서류미비자들의 운전면허와 건강보험 등 각종 혜택에 반대한다. 트럼프 지지세가 막강한 지금 미국에서 공화당 후보들의 입장이 비슷하다.
뉴섬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가 아니라 주지사로서 그의 능력, 그가 물러난 후의 캘리포니아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하겠다. ‘내 목소리’가 가주의 앞날에 반영되기를 바란다면 9월14일 투표에 필히 참여하자. 이번 선거는 가볍게 넘길 선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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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