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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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들은 빨래

2021-08-27 (금) 윤재현 은퇴 연방정부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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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주지사 쿠오모가 드디어 사직했다. 그의 잘못은 성폭행이 아니고 성희롱이다. 성폭행은 원치 않는 신체 공격이고, 성희롱은 원치 않는 성적 내용이 담긴 말과 신체 접촉으로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유발하는 행위이다. 내가 사람들의 뺨에 입 맞추거나 포옹하는 것은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한 행위라고 그는 변명하고 있다.

필자는 1960년대 후반 미 군사고문단의 통역으로 서울 삼각지의 육군본부와 길 건너 국방부에서 근무했다. 여군 그리고 여군무원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다. 나 역시 성희롱이나 그 경계선을 맴도는 행위를 범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외도 즉 탈선의 종말은 비극’이라는 좌우명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성희롱은 흔히 회식 때 일어난다, 상급자 옆에 그리고 남자 사이에 여군이나 여군무원을 앉히고 술을 따르게 한다. 노래도 부르게 한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농담과 음담패설이 나온다. 그 다음에 벌어지는 장면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온갖 파렴치한 행동을 ‘술김에 그랬다’거나 술 마시고 ‘실수했다’고 얼버무린다. 그 당시 그 정도의 성희롱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자들이 눈감아주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세상은 달라졌다. ‘speak up’하는 세상이다. 공군과 해군의 여자 중사 자살 사건으로 국방부 장관을 비롯하여 해군과 공군 참모총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대통령이 성폭행과 성희롱에 관한 주의를 담화로 상기했다. 군에서 성적차별, 성폭행, 그리고 성희롱 방지에 대한 교육이 대대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을 생각해본다. 문제의 밑변에는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유교의 여성차별과 남존여비 사상이 깔려있다. 군의 상명 절대복종의 문화도 한몫을 하고 있다. 찌들은 빨래처럼 성적차별과 남존여비 사상은 지워지지 않고 있다.

기독교 선교사와 서양문명이 들어오기 전 한국에는 여성의 권리와 인간의 기본권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의 삼종지의와 칠거지악이란 굴레를 씌워 여자를 억압했다. 삼종지의는 (1)어려서 어버이에게 순종 (2)시집가서 남편에게 순종 (3) 남편이 죽은 다음 아들에게 순종.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순종이다. 칠거지악은 (1)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 (2)자식이 없는 것 (3)음행하는 것 (4)질투하는 것 (5)고질병이 있는 것 (6)말이 많은 것 (7)도둑질하는 것. (2), (4), (5), (6)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이제 시계의 추는 저쪽으로 기울었다. 널뛰기 나무판은 여자 쪽으로 올라가고 남자 쪽은 내려왔다.

남성들이여, 조심하시오.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아도 무방하지만, 얼굴 아래의 몸 어느 부분을 주시하면 성희롱으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성희롱의 판단은 주관적입니다.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면 성희롱입니다.

<윤재현 은퇴 연방정부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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