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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이란 재난

2021-08-2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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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7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아프간을 장악하고 있던 탈레반 정권이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 인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속되는 자유’(Operation Enduring Freedom)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전으로 탈레반은 축출되고 하미드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하는 새 정부가 들어섰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것이 여성을 2등 시민 취급하고 가혹한 중세 이슬람 율법을 집행하는 탈레반을 영구 퇴출시키고 아프간을 안정적인 현대 국가로 만들 좋은 기회로 여겼고 그것이 아프간이 테러의 온상이 되는 것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 한 명이 당시 연방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있던 조 바이든이었다. 그는 2002년 아프간의 수도 카불로 날아가 미국의 지원으로 문을 연 여자 초등학교 행사에 참석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당시 아프간의 아동 학생 수는 90만으로 추산되는데 전부가 남자였다. 그 후 10년 뒤 이 숫자는 800만으로 늘어나며 여학생 비율은 37%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계획은 점차 틀어지기 시작한다. 그 첫번째 원인은 2003년 조지 W 부시가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시작한 이라크 전쟁이었다. 미국은 내전과 게릴라전이 뒤섞인 이라크의 수렁에서 오랫동안 헤매며 그 바람에 아프간 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탈레반은 전열을 재정비할 기회를 잡는다.

설상가상으로 현대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아온 아프간인들은 안정된 민주 정부를 세우는데 실패했고 새 정부는 무능과 부패, 분열로 점철된 세월을 보냈다. 새 정부 지도자들 대부분 소수 민족인 타지크계고 아프간인들이 전통적으로 외세에 의해 세워진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프간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파슈툰 족이 주축이 된 탈레반은 이런 약점을 파고 들어 민심을 얻으며 세력을 확장해 갔다.

아프간 전쟁이 20년간 이어지는데도 전세가 호전되지 않자 미국인들의 인내는 바닥을 드러냈고 아프간 철군이 선거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트럼프는 2020년 2월 카타르의 도하에서 아프간 정부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탈레반이 알 카에다 등 테러 집단의 아프간 이용 허락하지 않다는 조건으로 14개월 내 미군 철군에 합의한다. 거기다 아프간 정부에 압력을 넣어 5,000명에 달하는 탈레반 포로를 석방하게 만든다. 아프간의 운명은 이 때 결정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든은 취임한 후 미군 철수 일자를 9월 11일로, 8월 31일로 바꿨지만 탈레반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공세를 강화했다. 미군 철수가 확실해지자 정부군은 무기를 탈레반에 바치고 투항하기에 바빴고 카불은 지난 15일 싸워보지도 못하고 함락됐다.

카불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미국을 돕던 통역사 가족 등 친정부 인사 수만 명은 아직도 아프간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 초강대국 미국이 수 만 명에 불과한 회교 무장단체 탈레반에 의해 쫓겨나는 모습은 위상 추락과 함께 동맹으로서의 약속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번 아프간에서의 패배는 공화 민주 어느 한 당 책임이 아니다.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트럼프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일방적이고 급속한 철군으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바이든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아프간에 2조 달러를 쏟아부었다. 많다면 많은 돈이지만 한 해로 따지면 1,000억 달러로 미국 GDP의 0.5%에 불과하다. 9/11 이후 지난 20년간 미국에 회교도에 의한 큰 테러가 없었던 것은 미군이 아프간을 점령하고 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11년 오바마는 긴 이라크 전에 지친 여론을 업고 일방적으로 미군을 철수했다 ISIS라는 신흥 테러 집단이 창궐하는 바람에 다시 미군을 투입해야 했다. 지금은 여론이 아프간 철군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세를 올린 회교 극렬주의자들이 다시 뿌리를 내리고 이들에 의한 테러와 학살이 재발된다면 상황은 바뀔 것이다.

바이든은 가장 성공적인 전쟁인 1991년 걸프전에 반대하고 대표적 실패작인 2003년 이라크 침공에 찬성한 전력이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때 국방 장관을 역임한 밥 게이츠는 “바이든은 지난 40년간 모든 주요 외교 정책에 관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만은 아니길 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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