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아카데미 4개 부분을 석권해 한국을 으쓱하게 했던 ‘기생충’을 이어받은, 올해의 영화가 무엇일까 찾아보니 ‘노매드랜드’(Nomadland)였다.
노매드는 원래 유랑민, 유목민을 뜻하는 독일어다.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 후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차 한 대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을 동행, 취재한 책이 영화화된 것이다.
책의 부제(Surviving America in the 21st Century)처럼 미국에서 생존을 위해 차를 집으로 삼고 노동을 하며 전국을 떠도는 노매드들이 21세기 인간의 새로운 전형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세계에 포커스를 맞춘 이 영화로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여성으로는 두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1년... ‘US석고’는 수요 감소를 이기지 못해 네바다 주의 엠파이어 공장을 폐쇄했다. 7월에는 우편번호 자체가 없어져버렸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도시 전체가 무너지고, 순식간에 실업자가 된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은 암으로 남편도 잃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집까지 팔아 갈 곳이 없어진다. 그러나 펀은 ‘홈리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단지 ‘주택이 없는 사람(houseless)’임을 강조하며, 추억의 낡은 밴을 주거로 삼고, 일용직을 전전한다.
동료의 권유로 애리조나 주에 있는 노매드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 펀은 각양각색의 사연으로 새로운 형태의 삶을 선택한 많은 노매드들과 만나게 된다.
광활한 자연을 벗 삼아 길 위에서의 생활을 스스로 택한 그들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현재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삶을 받아들이고, 새 희망도 갖게 된다.
편하게 정착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지만, 펀은 길 위의 여정을 계속한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 비로소 열리는 새로운 길,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길 위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영상도 아름답다. 곳곳에 나타나는 광활한 평원과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 화려한 노을과 울창한 숲 등 아름다운 대자연은 노매드들의 고단한 삶에 보너스이다.
코비드19로 돈이 많이 풀려, 내 경제 상식으로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커지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가 짐처럼 따라다니는 이 때 이 영화를 보게 되어 착잡한 마음 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길이 계속되는 한 삶도 계속되고, 새로운 길도 열릴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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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리 /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