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양로원 가는 길은 매미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는 울창한 숲을 지나야 한다. 누님이 양로원에 들어간 지도 어느 듯 5년째가 되어간다. 코로나로 어느 누구도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던 지난 일년 반의 시간은 말을 못하는 누님에겐 혹독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백세를 넘기고도 한참을 더 살 수 있었던 장모님도 일년을 더 못버티시고 결국 세상을 떠나셔야 했다. 누님 건너편에 치매 걸린 할머니는 면회가 두절 된 후 두어달도 채 안돼 돌아가셨다고 들었고 장모님 건너편 할머니는 신문 부고를 보고서야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옆구리로 영양을 공급받던 장모님 옆 할머니는 나만 보면 “ 아저씨, 아저씨, 이리 와 봐. 등이 가려워 죽겠어. 나 등 좀 긁어줘.” 하시어 한참을 긁어드리면 “어휴, 시원해, 이젠 살았어, 고마워, 고마워.” 하던 그 할머니, 건너편 병동으로 간 지 일주일만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 뒤로 온 할머니는 젊어서 대단히 부유하게 잘 살았다고 하는데 들어올 때 본 자녀들은 한 두번 본 이후로 일년이 다 되도록 더 이상 본 적이 없었다. 돌아가신 치매 할머니는 세숫물을 틀어놓고는 다른 방을 돌아다니다 모든 옷이며 세간이 물에 젖은 것을 연약해 보이는 중년의 딸이 한시도 쉬지 않고 세탁하고 정리하는 걸 여러번 본 적이 있다.
차가 없어 버스를 몇 번이나 놓치고 두 번을 갈아타고 온다던 그녀의 얼굴엔 조금도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남편이 살았을 땐 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이 살았다던 옆 할머니는 장모님 이 건네주는 음식에 너무 감격하기에 자녀분들에게 좀 해갖고 오게 하라는 안스러운 말에 “애들이 교회 일이 너무 바빠서 안돼. ” 하며 자식들을 두둔해 하시던 모습이 더 안스러워 보였다.
장모님 건너편에 할머니는 자식이 없어 양아들을 두었는데 사업을 한다며 큰돈을 가져간 후엔 두 번 다시 그 양아들을 본 적이 없다던 할머니의 얼굴엔 양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해 보였다.
일년을 애벌레로 살다가 2주일가량만 이 세상에 살다간다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끝나면 곧 나뭇잎은 떨어지고 눈이 오는 계절이 올 때쯤이면 다시 한 해는 저문다.
고아였던 그를 거두어 길러준 양어머니의 돈을 갖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은 양아들, 교회 일이 너무 바빠 양로원에서 외로움에 하루 하루 지쳐가는 홀어머니를 잊어버린 자녀들, 차가 없어 두 번 버스를 타고와 갖은 궂은 일 마다 않고 치매 걸린 어머니를 돌보던 연약한 딸, 카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를 구분하시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양로원으로 가는 길에 우거진 숲에서 울던 매미 소리는 오늘 따라 그리도 유난스럽게 울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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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천 / 뉴저지 노스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