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의 아름다우심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나의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내 영이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의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이는 박재훈 목사가 편곡한, 내가 상당히 좋아했던 ‘주는 저 산 밑에 백합’이라는 찬송의 가사 일부이다. 한국에서 고등학생 시절 교회에서 내가 마음에 품고있던 두 여학생들이 이 곡을 이중창으로 부를 때면 그냥 깊이 빠져 들게 들었다.
곡, 가사 그리고 그 여학생들의 모습과 목소리 다 좋았던 것 같다. 그런 박재훈 목사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가장 큰 한인교회로 알려진 큰빛교회를 설립해 초대 담임목사를 지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원로목사로 계셨다. 99세를 살았으니 장수하신 것은 분명하다.
또한 그의 음악과 생애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끼쳤으니 남부러울 게 없는 삶을 살았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훌륭한 어른을 한 분 또 이렇게 떠나보내는 데에는 어쩔 수 없는 허전함이 찾아 든다.
내가 박재훈 목사와 직접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한 번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뵐 기회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대학교 시절 1979년 봄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박 목사가 한인합창단을 인솔하고 보스턴 지역으로 공연하러 왔다. 합창단원들 대부분 중년 이상으로 보였다.
연주곡 중 한두 곡 정도를 보스턴 지역의 한인합창단과 함께 부르게 되었다. 당시에 보스턴 한인합창단은 몇몇 교회의 성가대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도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두 지역 한인합창단들이 박재훈 목사의 지도하에 리허설을 같이 가졌고 공연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그 때 캐나다에서 내려온 합창단원들을 만나면서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합창단원 중 상당수가 지렁이잡이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렁이는 깜깜한 밤에 잡는다고 했다. 그 때까지 그런 일거리가 있다는 것조차 들어본 적이 없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런데 캐나다에는 그런 일을 하는 한인 동포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만큼 당시의 캐나다 이민생활이 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기야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의 생활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내 어머니처럼 청소일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세븐일레븐이나 하이스 등의 편의점에서 계산대나 재고 정리일을 하면 그나마 꽤 괜찮은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여자들 가운데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앉아서 키펀치를 두들기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이민자의 삶을 살아가는 토론토 지역 동포들에게 박 목사는 합창으로 위로하고, 힘을 주고, 격려해주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같이 모여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게 아마 그들에게는 분명 큰 낙이었을 것이다.
그 때 보스턴을 방문했던 토론토 동포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관광도 못 한 채 일요일 저녁에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다음 날 또 지렁이를 잡아야한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찡해왔다. 그런 동포들에게 40년 이상 사회적, 음악적, 그리고 영적으로 지도자의 삶을 살았던 박재훈 목사께 늦었지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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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