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은 24절기 중 가장 반가운 절기중 하나인 입추(立秋)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기이다. 길고 긴 겨울 혹한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입춘(立春)도 설렘이 있어 좋은 절기지만, 아직 여름 혹서가 한창인 8월 복중에 ‘가을의 시작’을 예고해 주는 입추야말로 지혜롭게 설정해놓은 절기 같다.
‘입추’라는 달력표기만 보아도 선선한 기운이 피부에 스쳐오는 것만 같다. 아무리 맹위를 떨치는 무더위도 입추 앞에서는 기세가 꺾이기 마련이다. 인간은 오만하고 욕심은 끝이 없지만 자연의 순환은 이렇게 때가 되면 겸손해질 줄 안다. 자연의 변화는 위대하다.
겨울은 너무 추워서 봄을 기다리게 하고, 여름은 너무 더워서 가을 오기를 기다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입추가 되니 시원한 기분마저 든다.
가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일까?
동양의 역(歷)에서는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의 석 달을 말한다. 기상학적으로는 9월~11월까지, 천문학적으로는 추분 9월23일부터 동지 12월21일까지, 24절기상으로는 입추부터 입동(11월8일) 사이를 가을이라고 한다.
금년 입추는 7일이다. 일 년 중 가장 덥다는 말복은 그 3일후인 10일이다. 금년은 왜 중복과 말복 사이가 길까? 월복 현상 때문이다.
초복에서 중복까지는 10일, 중복에서 말복까지는 또 10일이 걸린다. 그런데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초복·중복은 하지를 기준으로 하지만, 말복은 입추가 지나야 자격이 발생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월복이 발생한 금년은 여름이 10일 더 길어서 그 기간만큼 더 무덥다.
‘입추’는 ‘가을이 시작되는 날’이고 말복은 ‘여름의 마지막 더위’를 뜻한다. 말복 4일후인 14일(토)은 칠월칠석날이다. 칠월칠석을 전후하여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리고 입추가 지난 뒤의 더위를 잔서(殘暑)라고 한다.
“하늘은 높아지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을 여는 입추는 올여름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도 하지만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절기이다. 이 무렵에는 농촌이 한가해지기 시작하는 철이다.
입추는 겨울을 든든하게 나기 위한 준비로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에 대비하는 절기이다. 김장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이며, 백의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해 주는 유산이다.
입추에 이어지는 처서(處暑 8월23일)는 더위가 그친다는 의미이다.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풀을 베어내는 절기도 된다. 날씨가 선선해져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도 있다.
가을은 또한 허수아비의 계절이다.
“욕심없는 사랑으로/흰구름 한 조각 찢어다가/헐렁한 윗도리 지어 입고” “새 떼가 와도 손 흔들고 팔 벌려 웃고/사람이 와도 손 흔들고 팔 벌려 웃고/남의 논 일을 하면서 웃고 있는 허수아비” (한미순/조오현 ‘허수아비’ 시 각각 인용)
허수아비와 함께 길가에 피어있는 여름 꽃에도 시선을 준다. 아직은 화려한 색을 뽐내고 있지만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 것이라 생각하니 처연한 생각마저 든다.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뙤약볕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과 입추의 맑고 시원한 공기가 오버랩 된다.
인생의 계절도 바뀌면서 인생의 목표를 향하여 흘러가야 한다. 자연의 계절 변화는 끝이 없지만 인생의 계절 변화는 언젠가는 끝장난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이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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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모 워싱턴산악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