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장 오래된 위대한 문학 작품’

2021-08-1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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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 꼽힌다.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세운 수메르인들의 도시 우룩의 왕으로 추정되는 길가메시는 실재 인물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세월이 지나면서 전설 속의 영웅이 되는데 그의 모험담을 묶어 하나의 서사시가 완성된 것이다.

기원 전 1,500년 경 바빌로니아 시대의 서기였던 신 레키 운닌니가 쓴 이 작품은 점토판에 쐐기 문자로 적은 복사본이 아시리아의 아수르바니팔 대왕의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1849년 발굴돼 세상에 나오게 됐다.

작품은 폭군 길가메시를 벌 주러 신들이 엔키두를 지상에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엔키두는 길가메시와 격투를 벌이다 결국 지지만 엔키두의 힘과 용기에 반한 길가메시는 그를 친구로 삼으며 둘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모험을 즐긴다.


그러다 여신 이시타르의 요구를 거부하고 여신이 보낸 ‘천국의 황소’를 죽인 죄로 엔키두는 시름시름 앓다 죽으며 이에 충격을 받은 길가메시는 영생을 찾아 길을 떠난다. 길가메시는 많은 괴물과 악당을 죽인 끝에 술을 빚는 여성 시두리를 만나 영생의 비밀을 묻고 시두리는 대홍수 속에서 살아남은 우트나피시팀에게 그를 인도한다.

우트나피시팀은 죽지 않기 위해서는 잠을 자지 말 것을 요구하지만 길가메시는 이에 실패한다. 그러자 그는 대신 다시 젊어지게 하는 풀을 찾는 법을 알려주며 길가메시는 이를 얻는데 성공하지만 그가 수영하러 물에 들어간 틈을 타 뱀에게 도난당한다. 이 때부터 뱀은 허물을 계속 벗으며 다시 젊어지는 특권을 누리지만 길가메시는 죽음은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고 우룩으로 돌아간다.

이 작품은 서양 최초의 위대한 문학 작품인 일리어드와 오딧세이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딧세우스와 길가메시는 모두 죽은 자들이 사는 지하 세계를 방문해 그들의 슬픈 사연을 들으며 영생을 누릴 기회를 갖지만 하나는 스스로 이를 포기하고 하나는 실수로 놓친다.

또 이 작품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 이야기와도 흡사한 부분이 있다. 우트나피시팀이 신 엔키의 명을 받고 ‘생명의 보호선’이란 배를 만들어 일가족과 동식물을 태우고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것이나 물이 빠진 것을 확인하기 위해 비둘기와 제비, 까마귀를 차례로 날려 보냈는데 비둘기와 제비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해 돌아오고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자 배에서 내렸다는 부분은 노아의 홍수 스토리와 거의 같다.

한 동안 극소수 학자들의 전유물이던 길가메시 이야기는 제2차 대전 이후 독일에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폐허가 된 조국의 모습이 황량한 지하 세계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란 설도 있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도 이 이야기를 좋아해 이를 주제로 한 소설을 직접 쓰기도 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함께 사라졌던 ‘길가메시 서사시’ 점토판이 18년만에 이라크에 반환됐다고 한다. 연방 법무부는 ‘하비 라비’라는 단체가 보관하고 있던 이 물건이 불법적으로 취득된 것으로 보고 압류해 돌려주기로 했는데 이는 이라크에 반환될 예정인 1만7,000여 점의 유물의 하나다. 이렇게 많은 물건이 이라크로 되돌아 오는 것은 사상 처음이라 한다.

‘하비 라비’ 측은 워싱턴에 있는 성경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2014년 167만 달러를 주고 이 물건을 구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연방 당국은 이 물건이 이라크에서 도난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는 2017년에도 불법 유물 취득 혐의로 300만 달러의 벌금을 낸 바 있다. 이번에 반환되는 물건 중에는 코넬대가 갖고 있던 5,000여개의 이라크 유물도 포함돼 있는데 이 또한 도난품으로 알려졌다.

이라크는 인류 문명 발상지의 하나임에도 지난 수십년간 전쟁과 내전, 테러 집단의 암약으로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되거나 도난됐다. 이번에 반환되는 물건들은 그 동안 사라진 유물의 극히 일부라 한다. 이라크 유물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도굴꾼과 절도범, 밀수꾼에 의해 사라진 수많은 물건 외에도 이곳에는 수천년에 걸쳐 만들어진 귀한 유물들이 아직도 땅 속에 그대로 묻혀 있다. 하루 빨리 이곳에 평화가 돌아와 찬란한 인류의 유산이 빛을 보게 되기를 기원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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