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반 고흐 디지털전( ‘Immersive Van Gogh Exhibit) ‘ 을 보았다. 미국 17개 도시를 순회전시 중인 이 전시회는 맨하탄 PIER36 창고에서 열리고 있는데 사면의 벽과 바닥에 반 고흐의 대형 그림이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재현된다.
아를의 침실, 가셰박사의 초상, 삼나무가 있는 밀밭, 해바라기, 밤의 카페, 아이리스, 감자먹는 사람들, 올리브 정원과 사이프러스 나무 등 고흐 작품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바람결에 날리는 분홍 꽃잎이 하르르 날아와 꽃을 피우고 구근이 땅속에서 자라 올라 아이리스를 꽃피우고 하늘에 별이 하나 둘 총총 나타나고...음악과 어우러진 환상의 세계다.
생전에 유화 단 한 점을 팔았을 뿐 평생 가난과 우울증에 시달린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그림 그리는 것을 뒷바라지 해준 동생 테오와 나란히 프랑스 오베르 쉬르우아르 공동묘지에 묻혀있다.
이 디지털전을 보면 고흐가 얼마나 풍부한 감성과 다양한 색채의 화가인지 실감하게 된다. 프랑스 남부의 눈부신 자연이 붉은 색 초록색 푸른색 오렌지 진한 노랑 보라색 등 갖가지 칼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그가 자살을 했다고? 그것도 37세에 밀밭에서 권총으로 가슴을 쏘았다고?
고흐의 작품 900여점과 1,100여점의 습작들이 정신질환 (측두엽 기능장애로 추측)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의 단 10년 동안에 그려졌다. 그는 왜 그랬을까? 고흐의 한 전기영화는 권총 오발 사고였다고 하고 어느 책에서는 동네 10대 불량배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은 1890년 7월29일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라고 못박았다.
1889년 1월 왼쪽 귀를 스스로 잘라낸 후 몇 달 후 스스로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병실 창밖을 내다보며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는 원색의 소용돌이가 하늘가득 정신없이 돌아간다. 불확실한 미래, 가난, 외로움,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자살의 원인이라는데 천재적 예술가들의 창조성 안에는 정신병리적 요인이 있는 것인지, 헤밍웨이, 카미유 클로델은 양극성 장애, 미켈란 젤로, 에드가 앨런 포우, 에밀리 브론테와 샬로트 브론테 자매는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천재들에게 광기로 인한 일화는 많이 전해진다. 고흐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작품에 몰두했다. 천재들은 우울증을 예술로 승화시킨다지만 보통사람은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해야 할 까?
작년과 올해, 지인이거나 인터뷰 했던 사람 10여명이 질병, 사고, 노환,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중 코로나19 사망자나 코로나 블루로 인한 죽음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억울한 생각이 든다.
코로나 팬데믹 종착역이 보이던 미국이 최근 델타변이 감염이 확산되면서 다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4일 세계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가 2억 명을 돌파했고 미국의 하루 신규 확진자수는 다시 10만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렇게 계속 갈 거 같아, 공포감을 느껴, 슬프고 우울해, 기분이 바닥이야 하고 다들 말한다.
지난 5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19 확산이후 불안증과 우울증이 2배가량 높아졌는데 조사대상 15개국 중 한국이 36.8%로 가장 높다. 한국은 2003년부터 자살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우리 정서상 정신적으로 힘들어도 말하지 않는다. 병원도 안간다. 한인들의 정신질환도 미국 평균치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이민자에게 공통적인 언어 및 문화 소통능력 부족에 장기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이 우울증을 확장시키고 있다. ‘미친 듯 죽고 싶고, 미친 듯 살고 싶다’는 이웃이 있다면 참으라고 하지 말자. 도움이 필요하면 나 힘들다고 청해야 한다. 대화가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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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