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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대법관

2021-07-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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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 대법원의 진보파 좌장인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은 요즘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얼마 전 한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건강이나 법원 사정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은 은퇴할 때가 아니라고 못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반 공개적인 사퇴 압력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로 대법관 취임 27년이 되는 브라이어 대법관은 다음 달이면 83세가 된다. 오카시오 코르테스 의원 등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이 그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지금이 그보다 젊은 진보파를 대법관에 임명하기에 적기라는 이유 때문이다. 민주당 대통령에다, 임명과정에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상원도 민주당이 가까스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이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음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의 지배력을 상실하거나 자칫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패할 경우 진보 대법관의 임명은 어렵거나 불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아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연방 대법원의 보수화가 더 걱정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긴스버그 전 대법관의 예가 있기 때문이다.

긴스버그는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달 반 앞둔 지난해 9월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췌장암 등 지속적인 건강문제에 시달리면서도 그녀가 은퇴할 수 없었던 것은 후임 대법관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새 대통령 취임 전에 대법관 교체가 이뤄지지 않기를 바랬던 그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트럼프 임기 중에 후임 대법관 임명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긴스버그는 그 스스로 적절한 은퇴 시기를 놓쳤다. 오바마대통령 재임 당시 이미 80세를 넘긴 그녀는 주위의 은퇴 권고에도 불구하고 대법관직을 고수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집권한 후에는 은퇴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연방 대법관의 은퇴 시기는 정략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종신제인 대법관이 80이 되기 전에 자진해서 물러나는 것은 같은 당 대통령 재임 때 퇴임함으로써 보수와 진보의 지분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정 정파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대법관 종신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법관 종신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한다. 미국의 모델이 되었던 영국도 70세 정년으로 바뀌었다.

갈수록 뚜렷해지는 젊은 대법관 임명 추세도 문제의 하나로 지적된다. 경험과 경륜을 갖춘 60대 대신 40~50대가 대법관이 되는 예가 늘고 있다. 특정 정당이 대법관 자리를 오래 고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관 43세에 대법관이 돼 취임 당시 “앞으로 43년은 대법관을 할 수 있겠다”는 ‘덕담’을 들었던 클레어런스 토마스 대법관은 예외로 한다고 해도 긴스버그의 후임인 바렛 대법관은 48세, 3년 전 앤서스 케네디 전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캐버나우 대법관은 53세였다.

긴 임기는 재임 도중 대법관의 성향을 바꾸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다. 긴스버그는 세월이 갈수록 더 리버럴해진 반면, 토마스는 더 보수적이 됐다는 평을 듣는다. 대법관의 ‘변심’은 민의와는 별개로 이뤄지는 개인적인 일이어서 문제가 된다. 일반 국민의 보편 정서와는 동떨어진 판결이 내려질 수 있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의 권위와 적법성에 대중의 신뢰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대법원 개혁을 위한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대법관 임기제한 문제 등을 다루게 된다. 하지만 대법관 종신제는 헌법 사항이다. 바꾸려면 3분의 2이상의 연방의회 승인과 4분의 3이상 주의 찬성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양극화된 정치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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