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원래는 작년에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방문 일정은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무엇보다 입국 후 2주간의 의무 자가 격리는 한국행을 더욱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었고, 나 역시 2021년 상반기에 미국에서 모더나 백신을 맞게 되었다. 2주 자가 격리가 곧 면제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한국의 정책은 바뀌지 않았고, 결국 나는 2주 격리를 감수하고 지난 6월 입국했다.
자가 격리 후 우리나라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날로 발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며 엄청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환골탈태한 지방 도시들의 발전된 모습은 개인적으로 이제는 미국의 웬만한 대도시 그 이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찜통더위 속에서 항상 어디에서나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된다는 사실은 아쉬웠다. 미국에서의 이동은 보통 자차 운전으로 이뤄지고, 또 미국은 백신 완전 접종률이 50%가 넘었기에, 내가 살고 있는 가주를 포함, 백신 접종자에 한해 적어도 실외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곳이 많았다. 반면 대중교통 이동이 주가 되는 한국은 식당에서의 취식을 제외하고는 길거리에서도, 대중교통에서도,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되었다. 무더운 날씨에 땀범벅이 되면서 마스크를 항시 착용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이런 모두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 일일 1,000명대로 폭증하며 4차 대유행이 현실화되었다. 또다시 수도권에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되며 3인 이상의 모임은 금지되었고, 대다수 업종의 영업시간이 제한되며 자영업자들은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이제는 국민들도 한계에 다다른 듯 하고,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날로 커지고 있다. 우리가 백신 물량을 충분히 확보해놓았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까?
백신이 만능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다루는 신문 기사들은 적지 않다. 부작용은 속출하고, 다양한 변이 바이러스들은 기존의 백신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 관계만 따져보자. 초기 알려진 모더나, 화이자 백신의 예방률이 90% 초반대인데, 이는 여전히 약 10% 미만의 확률로 백신이 뚫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100% 예방을 보장하는 백신은 현존하는 질병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돌파감염이 마치 백신의 전반적인 무력함을 대변하는 듯 성토하는 기사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즉 백신만 충분히 확보해 놓았다면 작금의 4차 대유행의 파급력이 지금처럼 치명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나는 백신 수급 실패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인정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들어본 적이 없다. 대응 정책도 중구난방이다. 하다못해 해외 입국자의 유입이 마치 대유행의 근본적인 원인인양, 제한적으로 해제했던 해외 백신접종자 격리 방침을 원상복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7월부터 격리 면제조치를 받고 입국한 해외 백신 접종자 1만4,305명 중 10명이 확진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약 0.07%에 불과하며 그 10명 중 5명은 중국 시노팜 백신 접종자라고 한다. 이 경우 시노팜 백신 접종자만 대상으로 격리 면제 해제만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이미 효과가 충분히 입증된 화이자나 모더나를 포함한 모든 백신 접종자로 확대해서 적용한다니, 기가 찬다.
마스크를 벗어던진 수많은 미국 국민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코로나19 사태 초반 대응에 실패했던 미국은 백신을 앞세워 코로나를 극복해가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반면, 초기의 신속 대응으로 전세계의 찬사를 받던 한국은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지 못하고, 날로 악화되는 상황을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다.
인정하자. 2020년, K-방역은 성공했다. 그러나 2021년, K-방역은 실패했다. 이제 제발 자화자찬과 책임회피는 그만하자. 대신 정부는 백신 확보에 실패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현재 백신 수급현황 등 사실에 근거한 투명한 지침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을 선택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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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권 / 풀러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