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제프 베조스와 함께 우주로 솟았다가 돌아온 월리 펑크는 그저 운좋은 백발할머니가 아니다. 한 평생 하늘을 날며 우주비행에 도전했고, 82세에 그 꿈을 이룬 의지와 집념의 화신이다.
펑크는 태어나서부터 비행기를 좋아했다. 한 살 때 공항에서 처음 비행기를 본 순간 겁 없이 다가가 바퀴를 만졌던 아기는 비행기모형을 가지고 놀며 자랐다. 일곱 살 때는 직접 목재 비행기를 조립했고, 9세 때 처음 비행레슨을 받았다.
16세 때 스티븐스 칼리지에 입학한 펑크는 교내 항공프로그램 ‘플라잉 수지스’의 최우등생이었고 졸업할 때는 이미 비행사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이어 진학한 오클라호마 주립대에서도 ‘플라잉 애기스’의 장교로 선출돼 국제 대학생비행대회에 참가했고, 수많은 탑 파일럿 상과 여러 종의 항공면허를 취득했다. 틈만 나면 비행기에 올라탔고, 댄스파티에서도 빠져나와 야간비행에 나섰던 그녀는 20세 때 미육군사상 최초의 여성 민간비행교관이 되었다.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 경쟁에 돌입했던 1961년 월리 펑크는 나사(NASA)가 막 출범한 유인 우주탐사프로그램 ‘머큐리’의 여성비행사 선발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자격요건이 25~40세였으나 21세인 그녀만 예외적으로 포함됐고, 남녀 똑같은 수준으로 진행된 혹독한 신체 및 정신력 시험에서 펑크는 남녀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예를 들어 귀에 얼음물을 붓고 현기증을 일으킨 상태로 감각박탈 탱크 속에 들어가 버티는 테스트에서 그는 환각에 빠지지 않은 채 최고기록인 10시간35분을 견뎌 검시관들이 혀를 내둘렀다.
이 프로그램에서 7명의 남성비행사 ‘머큐리 7’과 13명의 여성비행사 ‘머큐리 13’이 선발됐다. 그러나 펑크를 비롯해 남자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여성들 모두 단 한 명도 우주로 날아가지 못했다. 미 정부가 여성우주비행사 프로그램을 아예 취소해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탈락한 여성들은 의회 로비에 나섰고, 이들의 노력 끝에 남자만 우주비행사로 인정했던 나사의 규정이 폐지되어 1983년 미국의 첫 여성우주비행사(샐리 라이드)가 탄생했다. 지금까지 전세계가 배출한 565명의 우주비행사 중에서 여성은 65명이고, 이중 미국 여성은 50명이다. 2018년 나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머큐리 서틴’은 이들의 스토리를 다룬 것이다.
한편 머큐리 프로그램이 취소된 후에도 월리 펑크는 좌절하지 않았고 우주여행에 계속 도전했다. 나사의 ‘제미니’ 미션에 두번 지원했고, 1966년에 또 한번, 그리고도 네 번 더 지원했지만 계속 거부당했다. 이유는 그녀에게 엔지니어링 학위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미국 최초의 지구궤도비행사 존 글렌 역시 공학 학위가 없었으니 이는 명백한 성차별이었다.
그래도 펑크는 하늘을 포기하지 않았다. 거의 2만 시간 이상을 비행하면서 3,000명이 넘는 조종사를 육성했고 최초의 여성 연방항공청(FAA) 감독관, 최초의 여성 항공안전조사관 등 항공 분야에서 수많은 ‘최초의 여성’으로 활약한 뒤 은퇴했다.
은퇴 후에도 우주로 날아오르고 싶은 꿈만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펑크는 71세 때인 2010년 무려 20만달러를 내고 ‘버진 갤럭틱’의 우주비행 탑승권을 구입했다. 그동안 출판한 책의 인세와 영화판권, 그리고 가족의 지원으로 마련한 돈이었다.
그리고 2021년 7월20일, 월리 펑크의 꿈은 이루어졌다. ‘버진 갤럭틱’이 아닌 ‘블루 오리진’의 우주관광 로켓 ‘뉴 셰퍼드’를 타고서였다. 억만장자 제프 베조스가 그녀를 첫 우주관광에 ‘명예승객’으로 초대한 덕분이었다. 이날 ‘뉴 셰퍼드’에 오른 4명의 승객은 제프 베조스와 동생 마크 베조스, 2,800만달러에 좌석경매를 낙찰받은 네덜란드 부호의 18세 아들 올리버 데이먼, 그리고 특별손님 펑크였다.
60년 전 나사의 우주비행사 선발시험에서 1등을 하고도 여자라는 이유로 우주에 가지 못했던 그는 마침내 꿈을 이뤘다. 지상 100킬로미터 상공의 우주에서 3분가량 머물며 무중력상태를 체험한 후 귀환하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녀는 이 비행으로 최고령 우주비행자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때까지의 기록은 1998년에 77세로 디스커버리 우주왕복선에 탑승했던 ‘머큐리 7’ 멤버이자 훗날 연방 상원의원이 된 존 글렌이었다.
한편 이날 꿈을 이룬 사람은 월리 펑크만이 아니다. 그녀를 초대한 ‘아마존’과 ‘블루오리진’ 창립자 제프 베조스(57) 역시 5세 때부터 우주탐사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고교시절 과학영재프로그램의 탁월한 인재였던 그는 졸업생 대표연설에서 “자원남용으로 고갈된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 우주 식민지화의 꿈을 갖고 있다”고 밝혀 마이애미헤럴드지에 인터뷰가 실렸고, 프린스턴 대학 시절에는 ‘우주탐사 및 개발학생회’ 회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의 부호가 된 그가 지난 2000년 민간 우주개발기업 ‘블루 오리진’을 설립한 것은 오랜 꿈의 산물이었다. 자린고비 식 아마존 경영으로 비난받아온 베조스가 그의 원대한 꿈, 우주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인류의 미래에 크게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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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