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교육의 선구자를 들라면 스코틀랜드 출신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이 첫 손가락으로 꼽힐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유명한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덤 추종자였던 그는 아들 존 스튜어트 밀을 벤덤의 후계자로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놀지 못하게 하고 3살 때부터 그리스 말을 가르친다.
그 결과 아들 밀은 8살 때 이솝 동화와 헤로도투스의 ‘역사’를 원어로 읽게 된다. 아버지 밀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 때부터 라틴어를 가르치며 아들 밀은10대 초반에는 논리학과 경제학을 배워 당대의 석학들과도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실력을 갖춘다.
그러나 이런 조기 교육이 J S 밀을 행복하게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20살 때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며 자신과 아버지의 일생일대 목표인 ‘정의로운 사회가 수립되면 나는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은 ‘아니다’였고 그는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한다. 그를 구해준 것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워즈워드의 시였다. 그는 그의 시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배웠고 다시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밀은 논리학과 여권 운동, 노예 해방 운동 등 각 분야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이름을 후세에 빛나게 한 것은 ‘자유론’(On Liberty)이다. 개인주의와 고전적 자유주의의 기본 원리를 밝힌 이 책에서 밀은 공동체 구성원의 의사에 반한 권력 행사가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타인에 대한 해악을 예방하기 위할 때”라며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는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이 나온 지 16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밀이 여기서 밝힌 자유와 권력과의 관계는 자유 민주 사회의 기본 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 확산과 함께 사회는 개인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백신 접종 거부자는 백신을 맞지 않을 자유를 내세우며 국가는 개인에게 접종을 강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백신 의무화론자들은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이를 옮길 위험이 있는 만큼 미접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정당하다고 맞서고 있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의무론자들이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달 텍사스 연방 지법은 휴스턴 감리교 병원 간호사 등이 병원측을 상대로 백신 의무화 규정이 불법이라며 제기한 소송을 기각했다. 이 소송을 담당한 판사는 백신 접종 의무화는 직원과 환자, 그 가족을 더 안전하게 하려는 조치라며 “환자를 돌봐야 하는 공공의 이익은 백신 접종권 선택의 이익보다 크다”고 판시했다. 이 병원 직원들은 병원측이 백신 거부자 170여명에게 2주간 정직 처분을 내리고 끝내 이를 거부할 경우 해고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하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판결은 백신 접종을 강제할 권한이 있느냐에 관한 미국내 첫 판결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어 이번 주 프랑스 의회는 일부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 백신 여권 제도 시행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극장, 헬스장, 식당 등 공공 시설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백신을 맞았다는 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파리를 비롯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 백신 접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며 11만 명이 시위를 벌였음에도 프랑스 의회는 법안 통과를 강행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 이탈리아 등이 비슷한 제도 마련을 수립하고 있어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여행은 물론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백신 앨러지나 기저 질환이 있어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선택권을 달라는 사람들의 주장이 전혀 무리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 확산세를 막기 위해 백신 접종자를 늘리는 것이 긴요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접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들은 자신은 물론 가족과 동료 등 주위 사람 건강에도 잠재적 위협 요소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를 목놓아 외치기 전에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보호받을 수 있다는 밀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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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