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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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과 백신

2021-07-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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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는 백신 접종자들이 잠시 내려 놨던 마스크를 오피스에서는 다시 올려 써야 하게 됐다. 버스는 여전히 ‘No Mask, No Ride’라는 불빛을 반짝이며 운행되고 있다. 백신 접종이 확산되면서 팬데믹 기세가 한 풀 꺾이는 듯 하자 미뤄왔던 결혼식을 서두르는 커플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장례식은 물론 결혼식에도 하객을 청하지 못했다. 결혼식 피로연이 확산의 핫 스팟이 된 경우도 있었다. “자, 드디어 웨딩 데이-.”. 그러나 한창 혈기왕성한 신랑 신부의 친구들 가운데 코로나 정도는 우습게 여기는 무접종자들이 노 마스크로 몰려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제 주변에선 백신 맞은 8명중 4명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해요. 백신 왜 맞아야 하죠?” 라는 카톡이 온다. “2번 다 맞고, 면역 형성기간이 됐는지 확인해 보실래요. 그랬다면 아주 예외적이죠”라는 답을 보낼 수밖에 없다.


잇달아 보내온 파일에는 에볼라 치사율 50%, 메르스 34.4%, 사스 9.6%, 계절성 독감 0.16%, 코비드-19는 0.15%라는 숫자도 첨부돼 있다. 0~20세 치사율은 0.0000 1%, 21-40세는 0.0003%, 80세 이상 0.5%라는 통계도 보내 온다. 어디서 온 숫자들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친구가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오겠다면? 고맙기는 하지만 머리가 복잡해 지지 않을 수 없다. 하객 중에는 건강을 염려하거나 연로한 분, 방사선 치료등으로 인해 면역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면역타협도 있기 때문이다.

곧 결혼을 하게 될 예비 신랑과 신부 중에는 결혼식 초청장을 보내면서 백신 접종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곳곳에서 이로 인한 마찰과 갈등도 생기고 있다. 당국의 백신 정책에 순응하는 대다수 한인들과는 달리 백신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는 미국인이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이다.

10월에 결혼식 날짜를 잡은 애리조나 피닉스의 한 신부는 들러리 등으로 결혼식을 도와 줄 친구 20여명은 모두 백신을 접종했다고 해 마음을 놓았다.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터졌다. 결혼식에서 신부를 신랑에게 인도해 줄 신부 아버지와 의붓 어머니가 백신을 접종하기 않은 채 맞은 척 하기로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결혼식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신부는 아버지의 딸 사랑을 믿고, 설득에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이번 가을에 캐나다 캘거리 인근의 고향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캐나다의 신부는 또 다른 고민에 부딪혔다. 국경 너머 미국에 살고 있는 친척들의 결혼식 참석에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렵지만 그 때쯤이면 결혼식 참석을 위해 캐나다로 넘어오는 것은 가능하리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가 백신 미접종자의 2주 격리 조처를 유지한다면 백신을 맞지 않은 친척들의 결혼식 참석은 어렵게 된다

이번 달에 결혼식을 올리는 캘리포니아의 한 신부는 완고한 부모 때문에 속을 썩이다가 결혼식 참석 조건을 완화했다. 중가주의 보수적인 시골마을에 사는 신부의 부모들이 완강하게 백신 접종을 거부해 결혼식 72시간내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것으로 대체했다. 9월에 결혼 예정인 뉴저지의 한 신부도 같은 결정을 했다고 한다.

가족 일이 최우선인 한인 가정에는 많지 않은 사례지만 개개인의 주장이 뚜렷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미국인 가족들 사이에는 코로나 결혼식이 아직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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