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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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보다 중요한 건 진실

2021-07-23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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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반년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연방의사당이 폭도들에게 점거 당하는 무참한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6개월이다. 전 세계가 경악 속에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건이 이제야 조사의 도마 위에 오를 참이다. 연방하원이 ‘1월 6일 의사당 난입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 중이고, 폭동 가담자 중 처음으로 플로리다의 30대 남성이 8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음으로써 500여 관련 피고인들에 대한 심판이 시작되었다.

일개 강도사건이 터져도 현장보존하고 신속하게 수사하는 게 기본인데, 국가체제의 근간을 공격당한 치욕적 사건이 이토록 오래 방치되었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미국이 정치적으로 상당히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정치적 양극화와 그에 따른 분열이 비정상적으로 심각하고, 진실과 상관없이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일이 비정상적으로 팽배하며, 거짓 동원 선동에 천부적인 지도자의 입지가 비정상적으로 탄탄하고, 그의 막강한 영향력 앞에서 공화당 정치인들의 눈치 보기가 비정상적으로 노골적인 것 등이 주요 원인이다.


1월 6일 사건 이후 여러 차례 바뀐 공화당의 입장변화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사건 직후 공화당과 민주당은 한 목소리로 폭도들을 비난했다. 그날 트럼프 연설에 환호하던 군중 수천명이 우르르 의사당으로 쳐들어가 분탕질하는 광경을 같이 지켜본 결과이다. 바이든의 대선승리 인준절차를 진행 중이던 의원들은 놀라서 달아나 몸을 숨기고, 폭도들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이름을 연호하고 “마이크(펜스 부통령)를 목매달라”고 합창하며 의사당을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헌법과 법질서를 파괴한 테러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공화당은 곧이어 태도를 바꾸었다. 폭도들의 정체는 트럼프 지지자를 가장한 좌파들이라고 주장했다. 설득력을 갖기에는 심히 어설펐다. 그러자 다음에는 “그냥 너무 흥분한 여행객들”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는 동안 확인된 것은 공화당 내에서 확고부동한 트럼프의 인기. 미 국민의 3분의 2는 트럼프를 반대하지만 공화당의 3분의 2는 그를 지지한다는 것이 여러 여론조사 결과이다.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거짓주장 역시 공화당의 66%에게는 여전히 먹히고 있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더 이상 눈치 볼 것도 없이 폭도들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자유를 수호하는 영웅이자 애국자이며 의로운 순교자라는 주장이다. 이들의 기세에 지난 5월 상원 공화당은 의사당 난입사건 조사 독립위원회 구성안을 부결시켰고, 이에 펠로시가 하원에서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밀고 나가는 중이다.

똑같은 광경을 보고도 정반대의 주장이 가능한 것은 그만큼 국민들이 양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그들이 의사당에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선거부정 때문”이었다며 “그들은 평화롭고 훌륭한 사람들로 의사당 내에는 사랑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그런 거짓말이 골수 지지자들에게는 사실보다 더 진실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골이 깊은 상태에서 진상규명이 가능하기는 할 것인가. 규명한다 해도 국민의 절반이 믿지 않으면 또 다른 분열의 소지가 될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사건을 그냥 덮자는 분위기이다. 파헤쳐봤자 국민적 화합을 저해할 뿐이라는 주장이 따른다.

미국역사에서 화합을 중시하느라 책임을 묻지 않았던 중대한 예가 있다. 남북전쟁 당시 북부군의 목표는 노예제를 종식하고 남부연합 주들을 미합중국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1865년 4월 9일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이 항복하자 북군의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은 리 장군과 군인들을 조건 없이 풀어주었다. 이들을 응징하면 남부 군인들이 각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전쟁을 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했다.


그리고는 4월 14일 링컨 대통령이 저격당했다. 부통령으로서 대통령 직을 승계한 앤드류 존슨 역시 남부반군들에 대한 처벌 대신 용서를 택했다. 그것이 화해와 치유의 길이자 과거를 묻고 미래로 전진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남부 연합군들이 각 지역 통제권을 장악, 짐 크로우 법으로 불리는 흑인규제법들을 만들면서 역사는 후진했다. 400만 해방노예들의 자유는 사라지고, 흑인은 물론 남부의 연방주의자들이 응징의 대상이 되었다. 인종차별은 1964년 민권법이 제정되고 나서야 금지되었다. 북부의 안일한 대응이 남부에 저항의 싹을 키운 결과이다.

의사당 공격은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책임규명을 확실하게 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다. 의사당 난입을 어떤 세력이 주도했는지, 트럼프와 측근은 사전에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의사당 보안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하원 진상조사위의 당위성에 여론이 힘을 실어줘야 하겠다. 진실이 국론을 분열할지라도 역사는 결국 진실을 딛고 전진한다.

<논설위원>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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