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로나 사태는 기업들의 명암을 가르고 있다. 원격 수업, 재택 근무 등이 보편화 되면서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대기업들은 떼돈을 벌고 있다. 반면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죽을 맛이다. 정부 보조금이라는 게 미국과 비교하면 미미한 액수인데다 이 달 들어 4차 대유행이 퍼지면서 어느 때보다 강력한 방역 조치가 취해져 사실상 많은 업소가 개점 휴업 상태다.
그러나 이런 절체 절명의 상황에서도 장사가 잘 되는 집이 있다. 이름을 대면 ‘ 아, 그 집’ 할 정도로 방송에 자주 나온 경기도 용인의 한 막국수 집이다. 화요일 빼고 아침 11시부터 저녁 8시20분까지 막국수를 파는 이 집은 언제 가도 기다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먹기 힘들다. 가장 바쁜 주말 점심 때는 한 시간은 기본이고 두시간씩 기다리는 일도 흔하다.
그런데도 서울은 물론이고 대전에서 부산까지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든다. 메뉴가 화려한 것도 아니고 번화가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다. 메뉴는 막국수와 수육 단 두 가지며 가게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주인에 따르면 이 집에서는 하루 평균 1,000 그릇의 막국수를 팔며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작년 30억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우선 이 집은 들어가면 분위기가 보통 막국수 집과는 다르다. 테이블부터 실내 장식까지 한결 같이 깨끗하고 정돈돼 있으며 곳곳에 그림과 글들이 걸려 있어 마치 무슨 화랑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화장실도 여늬 식당과 달리 청결함과 안락함에 각별히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주문해 나온 막국수의 모양도 특이하다. 어떤 손님이 “둥근 사리는 비녀를 꽂은 여인의 쪽머리처럼 단아하다”는 평을 남겼는데 꼭 그대로다. 막국수는 아무렇게나 만들어 대충 막는 음식이라는 통념을 깨기라도 하려는 듯한 주방장의 집념과 세련됨이 엿보인다. 모양만 빼어난 것이 아니라 최상의 메밀을 골라 도정된 지 일주일 이내의 메밀만을 사용한다는 것이 주인장의 말이다. 그렇게 해야 메밀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집 메뉴판이 다른 집과 다른 것은 그냥 막국수 이외에 어린이 막국수와 아기 막국수가 있다는 점이다. 보통 막국수는 8,000원인데 어린이용은 3,000원, 아기용은 무료다. 어른 음식인 막국수를 아이들도 먹을 수 있게 함으로써 가족 손님을 끌면서 어렸을 때부터 막국수 맛에 익숙하게 만들어 장기적으로 손님을 확보한다는 상술이라면 상술이고 배려라면 배려다.
이 집 주인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또 있다. 이 집에 와 기다리는 사람(대부분이 그렇다)들은 무조건 자기 이름과 휴대 번호를 입력해 놓아야 한다. 그러면 카톡으로 남은 대기 시간이 얼마라는 것을 수시로 알려준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손님 편리를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가 아니다. 언제 얼마나 많은 손님이 와 얼마나 기다렸고 재방문한 손님은 몇%나 되는지가 모두 파악된다. 한마디로 손님 관리용 빅 데이타가 매일 생성되는 셈이다.
이 집 주인 부부가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다. 일본 유학파 남편과 명문여대를 나온 아내는 2001년 호기롭게 강남에 240석 규모의 이자카야를 열었다 쫄딱 망했다. 빚만 잔뜩 지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던 순간 이들은 좋아하던 막국수 집을 열기로 하고 10년 전 외딴 곳에다 가게를 차렸다. 하루 한 그릇 팔던 가게는 사람들이 두 사람의 열정을 알아주며 하나씩 둘씩 손님이 늘며 오늘날 같이 번창하게 된 것이다.
이들 부부는 요즘도 시간이 나면 전국 각지의 막국수 맛집을 돌며 어떻게 하면 더 맛을 낼 수 있을까를 연구한다고 한다. 이 집은 최근 오뚜기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들기름 막국수’를 개발해 팔기 시작했고 여주인은 어떻게 창업에 성공했나를 적은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열과 성을 다해 자기가 택한 길을 가는 사람은 코로나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이들 부부 스토리는 보여주고 있다.
<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