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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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2021-07-19 (월) 서기영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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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 탓에 집안일을 조금 하고 온 몸에 진이 다 빠졌다. 그래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쉼을 청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창문 가리개가 흔들흔들, 딸가닥 달그락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다. 그러더니 누워있던 침대가 살아 일어난 듯 울렁울렁 움직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아들들이 있는 방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지진이다.” 이어폰을 귀에 끼고 열심히 오락 중인 두 녀석들은 엄마가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들들의 동의를 못 얻은 나는 내 몸이 너무 피곤해서 현기증을 느낀 건가 생각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방금 지진 맞지?”, “응, 나도 건물 무너지는 줄 알았어.” 남편의 대답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 내가 지금 마음을 놓는 거지?’ 근처에 지진이 났는데 상황이 어떤지, 다친 사람은 없는지 걱정해야 하는데 난 지금 지진을 느낀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 안도하고 있지 않은가...

전화를 끊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먼저 ‘큰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 버클리에 살 때는 이 정도의 지진을 여러 차례 경험했었다. 밤에 자다 말고 지진을 느끼고 가족이 같이 마당으로 나간 적도 있었다. 그래서 늘 집에 여분의 물, 캔 음식, 그리고 손전등을 준비해 두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혹시 학교에서 큰 지진이 나면 아빠 학교 잔디밭에서 만나자 하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늘 알려줬었다.


그런데 불과 30분 거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 온 후 지진에 대한 걱정을, 아니 준비를 잊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언제 올 줄 모르는 대지진을 미리 준비해야한다는 진리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쉽게 잊어버리며 지진은 나와는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우리 삶의 태도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큰 어려움이나 시련이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을 때가 되어서야 허둥지둥 흔들린 삶의 문제들을 해결한다. 큰 지진을 대비하여 지은 건물이 큰 흔들림을 견딜 수 있듯 우리의 삶도 인생 여정의 큰 지진을 대처하며 지어 가야겠다. 이제 나는 마트에 가서 예전과 같이 비축해둘 물과 캔 음식을 사와 일상 속에서 지진을 준비하는 한걸음을 옮겨놓아야겠다.

<서기영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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